기술 발달로 삶이 편리해지고 소셜미디어 따위로 온라인 교류가 활발해졌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실생활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고립감도 높아졌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소통할 친구가 있다면 삶은 살아갈 만하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어떨까? 하루하루가 쉽지 않을 테다. 2015년 개봉한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세상에 홀로 방치된 중년 남성 오베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스웨덴의 국민 도서로 불릴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어째서 불행은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발생할까? 곧 환갑을 바라보는 오베는 43년간 일한 평생 직장에서 조금 전 해고 통지를 받았다. 16세 때부터 아버지 뒤를 이어 누구보다 근면 성실하게 기차 청소노동자로 일해 왔건만, 회사에서는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그나마도 다행인 점은 복지 시스템이 좋아서 딱히 생계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들었다. 

이제 오베는 삶을 마감하려 한다. 몇 달 전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 그렇지 않아도 미련 없는 생이었다. 아내 소냐는 오베에게 찬란하고 따뜻한 햇살 같은 존재였다. 무미건조하던 오베의 삶은 소냐와 함께하며 총천연색으로 빛났다. 비록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지만 오베는 아내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 아내가 먼저 떠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도 없어지니 오베는 삶을 정리할 때라 판단했다. 

워낙 깔끔하고 원리·원칙을 잘 지키는 오베는 정리할 것도 없는 주변 정리를 마치고 조심스레 눈을 감는다. 그러나 이때 앞집의 이삿짐 차가 오베 집 마당을 침범한다. 갈 때 가더라도 이 상황을 넘길 수 없었던 오베는 새 이웃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 이웃도 만만치 않다. 오베의 성질에도 공구나 사다리 따위를 빌리러 자주 집에 방문하며 신경 쓰이게 한다.

셋째를 임신 중인 새 이웃은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오베를 수시로 찾으며 이 고집불통의 사내와 가까워진다. 식사를 같이 하고 커피도 마시며 정을 쌓아간다. 하루라도 빨리 아내 곁으로 가고자 한 오베의 계획은 그렇게 실패한다. 이제 그는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이웃과도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얄궂게도 오베에게 삶의 의미와 의지가 생기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겉으로는 깐깐하고 퉁명스럽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해서 미워하지 못하는 주인공 오베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이웃의 의미를 되새길 만한 작품이다. 또 세상 모든 행복이 나에게만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껴 자책과 비탄에 빠진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는 영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그리고 서로 마음의 벽을 쌓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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