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영원한 인류의 고전 「논어(論語)」에는 스승 공자의 평범한 어록이 담긴 일상 대화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가 추측할 때는 스승과 제자가 다소 딱딱하고 훈육 성격이나 격식을 차린 대화를 예상하나 실제로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제자들과 격의 없이 나눈 대화들이 많다.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할까." 즉, 여지하(如之何)를 반복하며 궁리에 궁리를 모색하는 스승 공자는 왜 진정한 교육자인지를 보여 준다. 이는 오늘날에도 교사가 학생 교육의 사표로 삼을 때 부족함이 없다고 믿기에 현대판 스승의 행동강령이라 할 것이다.

「논어」에서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공자의 가르침 중 하나는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주도 학습법이다. 하나를 알려 주면 적어도 두세 개 정도는 스스로 터득하기를 바란다. 여기엔 직접 화법보다는 은유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이를 ‘여지하 정신’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는 현대의 모든 조직에서도 구성원이 가져야 할 자세다. 하지만 배움의 현장인 학교에서의 필요성은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왜냐면 학생이 어떻게 배우느냐는 평생을 좌우하는 경험을 쌓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경쟁교육의 노예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도 어딘가 기댈 곳이 있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믿는 구석이 있으면 나태해지는 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기에 학생들 또한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인생의 과정에서 다른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과 분명 차이가 있다. 왜냐면 대학입시와 취업 준비, 자격증 시험, 공무원 시험, 대기업 입사 시험 등을 준비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몸을 다해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지하 정신을 집중 생활화하는 시기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교육하는 교사는 어떤가? 대한민국 교사 집단의 높은 학력(상위 5% 이내)은 자타가 인정한다. 심지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수차례나 "한국의 교육을 보라"며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함께 교사 집단을 ‘국가의 건설자(Nation Builder)’라 칭하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런 인재들이 임용고사를 거쳐 초·중·고 교육 현장에 입문하면 일부를 제외한 다수가 성장이 멈추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엔 철밥통이란 안정적인 신분이 주는 매너리즘과 단편적인 교육방식 그리고 교육시스템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학창 시기에 짧은 기간이나마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이 취업에 성공해 막상 교사가 된 후에는 상황이 거의 180도 달라진다. 이는 조직과 미래가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여지하 정신이 쪼그라지기 때문이다. 즉, 더 이상 궁리를 하지 않아도 미래가 보장되기에 그렇다. 한마디로 머리 아프게 연구와 궁리를 하지 않아도 중간은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국가적 인재 낭비요, 교육력의 손실이며 암울한 국가의 미래인가.

오늘날 우리 교육 현장은 다시금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는 여지하 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 이는 진정한 교육적 시선과 관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별 고민과 생각이 없는 인재 육성, 오래돼 낡아빠진 관행의 실행에 만족하고 철이 지나 먼지만 수북이 쌓인 익숙한 수업 이론과 생활지도 방식만 고수하며 입시교육에 매몰돼 디지털 대문명의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융합적인 인재 육성과는 거리가 먼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현실의 삶과 유리된 채 겉도는 지식은 여지하 정신으로 거듭 돌아봐야 한다. 성실과 모범생의 상징인 교사 집단이라 해도 교육적 성과나 결과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이는 여지하 정신의 실종이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못하는 건 결국 궁리다운 궁리를 하지 않는 공교육 책임이 크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교육적 시선과 관점으로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라고 묻기를 반복해 궁리하는 여지하 정신의 실천만이 시대정신에 발맞춰 교육을 더욱 교육답게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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