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로 황폐화된 라하이나 마을의 처참한 모습이 외신을 타고 연일 보도된다. 파악된 마우이 화재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외신을 종합해 본다. 마우이 화재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기 합선 가능성을 관계 당국은 추정한다. 그렇다면 인재(人災)다. 

불을 이기는 건 물이다. 외신은 피해가 가장 심각한 마우이 라하이나에서 소방관들이 소화전에 소방호스를 연결해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화재가 발생하자 출동한 소방관들은 "소화전에 물이 없다", "소화전에서 물이 안 나온다"며 허둥댔다는 것이다. 화재 초기 진압에 완전 실패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화재 현장의 수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한심한 소식에 그저 허탈할 뿐이다. 

게다가 마우이에 80개나 설치됐다는 경보 사이렌마저 먹통이 돼 주민 탈출이 늦어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도 들렸다. 선진국이라던 미국의 안전불감증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토록 풍광 좋던 마우이섬이다. 하지만 잿더미로 변한 시가지 위로 소방헬기가 나는 TV 화면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발생한 화재다. 불길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건진 주민도 있다. 넓디넓은 대양의 바닷물이다. 물 한 방울도 진화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와이는 인천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섬 지역이기도 하다. 1902년 12월 22일 한국 역사상 미 대륙으로 떠나는 첫 이민자 121명이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에 올랐다. 이듬해 1월 13일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것이 우리 이민사(移民史) 효시(嚆矢)다. 

인천에 소재한 인하대학교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의 발의로 출범했다. 하와이 교포의 2세 교육을 위해 이승만 박사가 설립·운영하던 한인기독학원(Korea Christian Institute)을 처분한 대금과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어린 성금을 기금으로 ‘재단법인 인하학원’을 설립해 오늘날 인하대학교를 개교했다. 때문에 교명(校名)도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 첫자를 따서 ‘인하(仁荷)’로 지었다.

이러한 하와이가 지금 화재 참극으로 위기에 처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우이다. 

저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마음이 통하면 처마를 잇대는 가까운 이웃, 비린(比隣)이라 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는 물의 근원을 생각하듯이 인하학원 개교 당시 도움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연전(年前)에 마우이에 친지 결혼식 참석 차 방문했던 필자다. 마우이에 체류하는 동안 지상에서 가장 큰 분화구가 있다는 할레아칼라 화산에 올랐다. 해발 3천55m에 달하는 정상에서는 웬만한 구름층은 모두 발 아래로 보였다. 

돌무더기 황무지(荒蕪地)에서는 어떠한 생명체도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화산 정상에서 자라나는 생명체가 있으니 곧 은검초다. 은검초(Hawaiian Silversword·銀劍草)는 할레아칼라 분화구 주위에서만 군생하는 희귀한 식물로, 은으로 된 검과 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했다. 온통 황무지라서 수분도 없는 곳에서 자라나는 생명체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화재로 인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돼 버린 하와이 왕국 옛 수도 마우이다. 미국은 강국이다. 지금은 비록 황성(荒城)의 적(跡), 황성옛터로 변했지만 은검초의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지상낙원(Paradise On Earth)’ 명예를 다시 찾으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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