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역사는 영광의 역사와 치욕의 역사로 구분할 수 있다. 8·15 광복절은 영광의 역사이고, 8·29 경술국치일은 치욕의 역사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광의 역사는 비교적 잘 기억하고 기리는데 비해 치욕의 역사는 가급적 빨리 잊으려 한다. 

2023년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 113주년이 되는 아주 치욕스럽고 슬픈 날이다. 해방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매년 8월 29일이 되면 선언서를 발표하거나 기념식을 열었다. 국가의 치욕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1910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하고, 일주일 뒤인 8월 29일 대한제국 순종(純宗) 황제의 칙령으로 이를 공표하면서 대한제국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경술국치일은 조선왕조 개국 519년이요, 대한제국수립 14년 8월의 일로써 지금으로부터 만 113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충신인 학부대신 강암(剛庵) 이용직(李容稙)은 "이 같은 망국안에는 목이 달아나도 찬성할 수 없다"라고 반대하면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강제병합 조약 직후 역사학자이자 시인인 매천(梅泉) 황현(黃玹), 참정대신인 한규설(韓圭卨), 의정부 참찬을 역임한 이상설(李相卨) 등 일부 지식인과 관료층은 이를 일방적 압력에 의해 이뤄진 늑약(勒約)으로 보고 극렬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9명의 조선 총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무단통치를, 미나미 지로는 무자비한 공출과 황국신민화를, 도조 히데키는 우리나라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로 삼은 악명 높은 조선 총독들이다.

지난 2016년 광복회는 국권을 되찾은 광복절을 기념하듯 국치일도 잊어선 안 된다는 뜻으로 조기 게양을 각 지자체에 건의했고, 지방자치단체는 국권 상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조기 게양 조례까지 만들었다. 

친일 매국노 후손은 지금도 득세하고, 독립투사 후손은 대부분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전국 수많은 곳에 친일파의 동상이나 기념물, 기념관이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해마다 8월 29일 경술국치일을 기억하고 조기를 달아야 한다. 우리는 망국의 원인을 밝히고, 앞으로의 국난에 대비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돼 국력을 최대로 증진해야 한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가장 큰 원인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세계 정세와 고종(高宗)·순종(純宗) 황제의 무능,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들의 매국행위에 있다. 실제로 일본은 1863년 명치유신(明治維新)을 계기로 문호 개방과 부국강병을 이루고, 서구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편승해 무신(無信)·무력·겁박으로 조선을 강점했다. 고종과 순종 황제는 황실의 안녕과 보존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여 동학농민혁명과 독립협회를 탄압하는 바람에 민력(民力)을 진작시켜 부국강병과 독립자주의 기초를 다지는 데 실패했고, 친일파들은 사리사욕에 혈안이 돼 한일병탄을 성사시키는 데 앞장섰다.

경술국치 113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악행을 고발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로 위안부, 역사교과서 왜곡, 강제징용 배상, 독도 영유권, 무역 역조, 강탈해 간 문화재 반환 등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또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반성하고,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국치일도 기념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민족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강화하는가 하면, 국가보훈부가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들을 발굴해 훈장을 수여하고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해외 독립운동가 유해를 봉환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야당과 협치해 국민 통합을 기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국과 등거리 외교를 강화하고, 남북한 당국 간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를 기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