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가르치는 자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필자가 청운의 꿈을 안고 전통의 명문 사범대학에 입학했을 때 당시 대학 본부 정면에 부착된 교육 슬로건이다. 4년의 예비교사 생활을 하면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 사도(師道)를 키워 나간 가르침이었다. 그렇게 배움을 익혀 가면서 ‘배워서 남 주자’는 교육관으로 발전했다. 이는 교사생활 내내 변함없는 교육 가치관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를 거치면서 교사생활 초창기는 국가가 산업화에 일로매진하는 과정에서 교사는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인정하고 부러워하던 대한민국 교사상(像)이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어느 정도 존경과 인정을 받던 그 시기는 가르치는 자의 자긍심을 높여 줬고, 그런 사회적 대접으로 더욱 스승의 길을 걷고자 필사적인 노력과 봉사, 헌신이 뒤따랐다.

대학입시에 매진하던 2000~2010년대까지는 오후 11시까지 교실의 전등불을 대낮처럼 밝히던 시절이었다. 한때 유럽에서는 이런 모습을 자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기적’이라 칭하며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학생 지도의 육체적 피로는 그 대가로 돌아오는 만족감과 자긍심으로 충분히 상쇄돼 교직생활은 보람의 연속이었다. 이른바 교직의 황금기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랄까. 어느 시점부터 급격한 사회 변화와 더불어 학생과 학부모가 전혀 다른 이방인으로 다가왔다. 생활지도의 어려움과 학부모의 갑질, 비난, 악성 민원, 교권 침해, 나아가 교권 학대로의 악화는 이미 상상을 초월한 교실 붕괴와 함께 교사를 옥죄는 ‘생존권 확립’의 순간까지 다가왔다. 연일 발생하는 크고 작은 학교폭력은 사회문제가 됐고, 그 속에서 학생 인권을 강조한 교육당국의 조례는 걸핏하면 아동학대 신고의 홍수를 이뤘으며 교사, 학생, 학부모 간 민형사 송사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교육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최근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 교직 2년 차 25세 교사가 교실에서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전국적으로 교사는 물론 교원단체의 추모 물결과 함께 ‘교사 생존권 쟁취’ 투쟁으로 이어졌다. 교육부는 뒤늦게 진상조사와 교권 보호를 위한 정책을 제시했고, 교원단체는 ‘이제는 스승이란 이유로 참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내세웠다. 그뿐이랴. 초등학생이, 고교 졸업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수업 중 교사가 학부모에게 폭행당하고, 근무 후 스토킹처럼 문자와 전화 테러에 시달려 교사들은 멍들고 지치고 생명까지 버린다.

우리 학교 현장이 왜 이렇게 됐을까? 과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군사부일체’의 스승 존중 사상은 어디로 갔는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교사들은 최단시간에 쌍방향 온라인 수업 기틀을 이뤄 낸 역량에도 불구하고 공로는 차치한 채 왜 이런 푸대접을 받는가? 이 시대에 교단을 지키려면 남다른 교육관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효자(녀)는 부모가 만든다"고 하듯이 ‘교사 대접해야 스승이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우선 형성해야 한다. 더불어 교사 스스로 직장인을 뛰어넘어 전문 직업인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의 배가가 필요하다. 이는 곧 교사는 ‘있는 둥 마는 둥’ 존재하는(exist) 것이 아니라 학생 성장·발달에 영향력을 미치며 존재하는(present) 스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책임과 소명이다.

대한민국 교사는 높은 학력과 도덕성을 인정받는다. 필자는 이에 대한 자부심으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다해 스승이 되기 위해 몸부림쳐 왔음을 고백한다. 이로써 대과 없이 정년퇴직을 맞이함에 따라 그간의 모든 인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위로 삼고자 한다. 끝으로 갈수록 험하고 어려운 교직을 지키는 이 땅의 존경하는 모든 교육자와 스승을 꿈꾸는 교사 제위께 이 글에 위로와 격려, 응원을 담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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