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두 번째 학사경고를 받겠구나 직감한 날, 세 번째 휴학계를 냈다. 이때 아니면 언제 가 보겠냐며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돈을 아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도착하면 곤돌라를 실컷 타고 싶었는데 물거품처럼 계획이 틀어졌다. 부주의로 기차 안에서 벌금을 세게 문 탓이었다. 이런 기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캐리어 바퀴까지 빠져 버렸다. 기차역에 내려 엉엉 우는데 누군가 휴지를 건네줬다.

곤돌라는 물 건너갔고, 베네치아에서 꼭 가 봐야 한다는 산마르코 광장까지 결국 걸어갔다. 운하 때문에 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의지할 데라곤 간간이 벽에 붙은 ‘per San Marco’라는 이정표뿐이었다. 좁고 기다란 골목을 헤매다 길을 잃어버렸다 싶으면 기어코 저 노란 팻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눈앞에 산마르코가 나타났을 때는 길을 헤매는 일도 어째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영화하는 사람이 이렇지 뭐." 술자리가 밤새 이어질 때마다, 이른 아침 촬영 콜타임이 우스워질 때마다 선배들은 면죄부를 건네듯 말했다. 은근슬쩍 묘한 유대감이 피어올랐다. 홀린 듯 시공간 개념마저 뒤죽박죽 엉켰다. 한번은 시계를 보니 여섯 시라 학생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굳게 잠긴 문 앞에서 새벽 여섯 시임을 알았다. 터덜터덜 돌아간 자취방이 꼭 인큐베이터 같았다.

그즈음 오랫동안 아팠던 고향 친구한테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많이 건강해졌고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말에 공원으로, 오락실로, 야구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친구는 야구장에 갈 때마다 아이스박스에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젤리 따위를 자꾸 싸 왔다. 넙죽넙죽 받아 먹으면서 학교를 휴학하듯 인생도 잠깐 휴생(?)하면 좋겠다고 속없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거미줄에 걸려 얼굴이 얼얼할 때"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했다. "줄기를 타고 나무가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땅에 내려오듯 살고 싶습니다." 주문 같은 시에 또 은근슬쩍 홀려서 이젠 어디에 뒀는지도 모를, 기념품으로 샀던 산마르코 이정표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그래서 인큐베이터를 떠나긴 했는데, 산마르코에 다다랐나 아니면 골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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