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KG패스원 교수
김준기 KG패스원 교수

이타적 행태에서 비롯한 공은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하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 얻는 결과물이다. 공은 이바지한 성과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돌아가지만 그것을 세운 사람에게도 상이 주어지며, 혹자는 보상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공을 세우는 데 나서기도 한다.

공은 양날의 칼이다. 대가를 염두에 둔 공은 자칫 파국을 맞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해서다. 따라서 공로는 세움과 동시에 몸은 그것에서 멀리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기 전 자기 입으로 공의 전모를 밝히거나 세상이 인정해 주기 전 자기 스스로 공의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자랑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자긍심과 보람이 물거품이 되듯이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공적은 노력의 결과가 무위로 끝나거나 오히려 화근이 돼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태종의 왕위 계승은 처갓집의 물심양면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장인 민제를 비롯해 부인 민씨와 처남들의 목숨을 건 헌신적 도움으로 이방원은 정치적 지지자들을 규합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조선 제3대 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 기여의 결말은 냉혹하고 처참했다.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은 사약을 받았고 나머지 두 처남들도 마찬가지 신세로 전락했으며, 중전인 원경왕후는 폐위까지 몰렸다. 결국 사위이자 매부이고 남편을 왕으로 만든 민씨 집안은 역적에 준하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외척의 국정 개입을 꺼렸던 태종의 의도와 무관하게 얻으려 했던 공헌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하고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내세우는 공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없는 공을 만들어 내거나 위조하는 경우다. 우리 주변에는 공적 지위를 사용해 공을 이룬 것처럼 처신하는 인간들이 있다. 예컨대 아무런 공적 권한 없이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피해자를 구조하고 사태를 수습한 것처럼 어쭙잖은 행세를 그럴듯하게 하고, 사진과 인터뷰로 없는 사적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사례도 있었다.

세운 공을 스스로 들추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본인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기만하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공의 날조 과정에서 공적 질서를 훼손하고 사회적 손해를 유발하며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는 반드시 법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룬 공로를 앞세우는 의욕은 욕심이지만 없는 공로를 있는 것처럼 기망하는 마음은 사심(邪心)이다. 단순히 결핍의 충족을 원하는 욕심은 그 부작용이 나에게로 향하지만 사심은 그 여파가 주변에 피해로 돌아가기도 한다. 착한 일을 한 것 없이 칭찬을 듣는 것은 나쁜 짓을 한 일 없이 남의 비방을 받는 것만 못한 법이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정상적으로 치러졌다면 아마 너도 나도 내 업적이라고 으스대고 우리 덕분이었다고 우쭐했을 테지만 파행에 대해서는 서로 책임을 기피한다. 공로를 내세우는 데에는 방종한 태도로 욕심이 작용하고 교만이 작동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는 용기 있는 태도로 양심이 작용하고 인격이 작동한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내로남불에 심각하게 감염된 채 실적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고 극성스러운 인간들에게는 책임 회피도 빈번하고 의무 전가도 용이한 일이다.

우리 삶은 소중한 것을 얻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우선이고, 행복해지는 것보다 불행해지지 않는 것이 먼저며,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를 막거나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울러 공로를 자랑하거나 내거는 것보다 오류를 수용하고 실수를 수긍하는 일이 더 어렵고 의미 있다. 

극한 상황에 직면한 인간을 발견하고 관찰을 통해 그 반응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 실존주의라는 점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인간의 민낯은 한계 상황에서 드러나며 권력에 대한 신뢰는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에서 나타난다. 진실은 내 탓 속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날개가 있는 동물은 다리가 둘뿐이고, 뿔이 있는 짐승은 윗니가 없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권력으로 명성과 공명을 누리려 드는 것은 뿔 달린 범과 같고 다가오는 것은 재앙뿐이다. 권력 있는 쪽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고,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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