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지방자치의정연구소장
박용진 지방자치의정연구소장

조례는 주민 삶과 직결되는 정책들을 제도화한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조례 제·개정 건수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이미 시행 중인 조례가 당초 입법 목적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평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조례가 운영될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43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보유한 조례는 10만4천122건으로 나타났다. 자치단체별로 보면 광역자치단체가 평균 765건, 기초자치단체는 평균 402건에 이르렀고, 이 중에서도 경기도가 1천113건으로 전국 최다다. 그야말로 조례의 홍수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약 10년 전부터 시행 중인 조례의 실효성을 평가해 개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례가 있으니 바로 ‘조례 입법평가 조례’다. 지자체별로 조례 명칭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시행 중인 조례의 입법 목적이 제대로 실현되는지를 분석·평가해 개선하는 것으로서 사후 실시하는 입법평가를 의미한다.

올해 8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교육청 4곳을 포함해 총 65개 광역·기초자치단체에서 이 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의 경우 2014년 ‘경기도 자치법규 입법영향분석 조례’를 제정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전·사후 입법 영향을 분석하며, 경기도의회 입법정책위원회를 통해 주기적으로 사후 입법평가를 실시한다.

그 밖에 경기도내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수원시, 부천시, 파주시, 시흥시가 조례에 대한 입법평가 조례를 제정했지만 현재까지 실제 평가를 하는지는 미지수다.

조례에 대한 입법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례 효과를 어떻게 평가할지 기준을 정하는 일이다.

지자체별로 입법평가기준표를 만들어서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해당 조례를 보유한 자치단체에서 제시한 입법평가기준표를 보면 조례 효과성 평가 기준이라기보다 법령상 정비 목적 기준이 많이 포함됐다. 이는 기존에 입법평가 조례를 시행 중인 다른 지자체의 평가기준표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례 효과성을 분석하려면 단순히 법적 정비 수준이 아니라 정책평가에 준하는 실효적 입법평가기준표가 제시돼야 한다. 

그렇다면 조례의 입법평가기준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까. 세 가지 기준으로 압축해서 재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입법 목적이 여전히 적정한지, 이행 수단이 충분히 효과적인지 그리고 정책환경 변화를 잘 수용하는지를 평가할 기준표가 핵심이다.

첫째, 조례 입법 목적에 대한 적정성 평가기준이다. 조례를 처음 만들 때 달성하고자 한 정책목표가 평가시기에 이르렀을 때에도 여전히 실현가능한 목표인지, 입법 목적 설정이 유효한지에 대한 필요성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

둘째, 조례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행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조례에 규정된 각종 제도나 예산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조례에 대한 효과성 평가 역시 조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나 예산 등의 이행수단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 분석할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셋째, 정책환경 변화에 대해 시행 중인 조례가 충분히 잘 수용하는지에 대한 평가기준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책환경의 등장과 변화로 인한 상위 법령의 개정 내용을 잘 반영하는지, 이 밖에도 정책환경 변화에 따른 주민 요구를 여전히 잘 수용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상 기준들에 대해 평가한 결과, 미흡한 점이 있으면 그에 대한 원인 파악을 통해 개선안을 도출하고 최종적으로 해당 조례의 유지 또는 개정·폐지를 결정하면 된다. 

전국적으로 한 해에도 수천 건씩 늘어나는 지방의회 조례들, 새롭게 조례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시행 중인 조례가 본래 목적을 잘 실현하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평가 후 개선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조례에 대한 입법평가,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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