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 남자야?" 기자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 형식의 한 가지다. 다른 사람 정체를 검문하는 무례함과 오만함을 담아서다.

지난 주말 불현듯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카락을 싹뚝 잘라 버린 충동도 거기서 출발했다. 이날 공원을 걷던 중 한 사람과 마주쳤다. 흰 피부에 짧게 친 흑발 머리, 건장한 체격과 편안한 옷차림. 조그만 몰티즈 한 마리와 산책 나온 그를 보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새도 없이 머릿속에 의문이 차 올랐다.

‘저 사람은 여자야? 남자야?’ 그리고 이내 부끄러웠다. 지나가는 행인 성별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무례했다. 이어 국내 포털사이트 남성 웹툰 작가 ‘가스파드’가 떠올랐다.

그는 웹툰 ‘타고난(선천적) 얼간이들’에서 머리를 장발로 기른 뒤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목욕탕에 들어설 때마다 성별을 아리송해 하는 주변 시선을 느껴 바지부터 서둘러 벗는단다. 하체를 드러내는 일이 남성임을 증명할 가장 빠른 방법이어서다. 그 불편한 사정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으나 다소 안쓰럽게 읽었다.

머리 짧은 여자와 머리 긴 남자는 날마다 이 같은 시선과 싸워야 하는가. 머리칼은 두피를 보호하는 단백질 덩어리에 그치지 않고 중요한 노릇을 수행했다. 골몰하던 기자는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을 경유해 오히려 어떤 가능성이 선명해지는 지점에 도달했다. 유레카, 머리카락은 가장 손쉬운 혁명의 도구다!

프랑스 행위예술가 생트 오를랑은 1989년 "여성과 남성 몸과 관련해 만연한 표준에 반대한다. 인간 신체와 예술작품에 제약을 가하는 관습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육신의 예술 선언문’을 발표한 뒤 ‘성 오를랑의 환생’이란 프로젝트로 9차례에 걸쳐 성형하면서 수술 과정을 촬영했다.

눈을 키우거나 코를 높이는 미용 성형이 아니었다. 그는 눈썹 위를 비롯한 얼굴 부위 4곳에 실리콘 뿔을 이식했다. 이 작업은 현대의학 기술로 변형 가능한 대상이 된 인간 신체를 다시 정의하면서 고정관념을 타파했다.

얼굴에 뿔을 심는 일만큼 변화가 급작스럽진 않아도 머리카락은 여전히 얼마나 훌륭한 재료인가. 일상에서 단순히 기르거나 자르는 일만으로 사람들 인식을 시험한다.

"왜 머릴 잘랐어(또는 길렀어)?", "남자야? 여자야?" 따위 질문과 맞닥뜨리며 날마다 자신 정체를 해명해야 하는 자리에 서는 일은 모든 취약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불꽃처럼 가까운 혁명을 꾀하기 참으로 적합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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