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긴 여름의 터널을 거의 벗어났다. 며칠 동안 올 여름 폭염 위세를 조롱이라도 하듯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더워서 에어컨 스위치를 켰다 껐다, 선풍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원해지니 갑자기 손이 심심해졌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제 인생의 황혼을 보내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갑자기 공허함을 느낀다. 아들과 딸은 이제 다 장성해 잘 살고, 옆자리에는 사랑하는 마누라가 있는데도 왜 공허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마누라는 갱년기를 겪으며 날마다 기도를 하면서 생체리듬을 잘 유지하는데, 그녀는 젊을 때부터 시간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달콤한 신혼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학생이 되자 그녀는 더 바빠졌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이들과 남편 아침밥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물론 기자 역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직장생활에 늘 바빴다.

남편 잘 만나 팔자 핀 여자들이 흔히 공허함을 채우려고 홈쇼핑에서 충동구매한 뜯지 않은 각종 물품이 방 안에 가득한 집도 있단다. 물론 주변에는 이런 여성들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면서 자신 삶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 평균 퇴직 연령은 40대 후반이라고 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과 가족 생계를 위해 제2·3의 직장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기자 역시 행운아라면 행운아다. 누구는 주말이면 답답한 도시를 떠나 농장에서 사과나 복숭아도 따고 황토집도 짓고, 동네 어르신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산다.

한데 기자는 이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은퇴 10여 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만큼 준비했을까. 100세 시대를 맞아 6부 능선을 넘는 스스로를 위해 과연 무엇을 했을까.

수험생이 아무리 열심히 시험을 준비해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듯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려고 제아무리 많은 준비와 계획을 세워도 마음속 깊이 자리한 공허함을 완전하게 털어내지는 못하리라. 다만, 여생을 어떻게 유의미하게 보낼지 스스로에게 더 자주 묻고 답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노후 준비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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