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며칠 전 성조숙증 검사를 하려고 아이와 병원을 찾았다. 남녀 성별 구분 없이 8~9세 때 이 검사를 보통 한다. 우연하게 치과에서 한 뼈 나이 검사에서 실제 나이보다 많이 나온 탓에 성조숙증까지 검사했다. 아이가 단 1㎝라도 더 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검사를 앞둔 아이는 잔뜩 긴장했다. 처음으로 피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왼팔에 노란색 고무줄을 묶는 순간부터 피를 다 뽑을 때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는 단 한마디도 못하고, 피를 뽑는 자신 팔도 보지 못했다. 1분이 1시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처럼 느꼈을 테다.

한마디 비명조차 없이 무사히 피 뽑기를 마친 아이는 채혈실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보상이 필요해 보였다. 병원을 나오면서 맛있는 점심을 사 주기로 했다. 아이는 초밥을 좋아한다. 엄마 몰래 모바일 게임 아이템도 사 주기로 약속했다. 보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가의 눈물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아이와 병원에 간 날은 ‘공교육 멈춤의 날’인 지난 4일이다. 여러 날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당일 학교 수업이 마땅치 않을 듯해 선택했다.

학교는 단축수업을 결정했다. 그나마도 1교시는 학교장이 수업을 지원하고, 나머지 2~4교시는 만화를 시청했다. 뒤늦게 이 얘기를 들은 아들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아깝다"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화 보면서 놀 기회를 놓친 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기자 학창시절 때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1980년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다녔다.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학급에서 성적 꼴찌를 도맡아 하던 친구다. 준비물 따위도 수시로 빠뜨렸다. 하루는 담임선생이 교탁 앞으로 그 친구를 불러 세웠다. 손목시계를 푼 담임은 느닷없이 오른손으로 그 친구 왼쪽 빰을 때렸다. 그 순간 친구는 교탁에서 3m가량 떨어진 교실 앞문에 날아가듯 부닥쳤다. 당시 담임은 170㎝ 안팎의 키에 100㎏이 넘는 체구였다고 기억한다. 친구는 140여㎝에 호리호리했다. 요즘 같으면 찾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어린이헌장이 있다. 어린이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애정을 담아 교육하고, 놀고 공부할 시설과 환경도 만들어 주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1957년 5월 만들었다. 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이미 있던 헌장이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다.

당시와 현재를 견주면 아이들 인권이 많이 향상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은 지우지 못한다. 공교육 멈춤의 날, 교사들은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고 공교육을 정상으로 돌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집회엔 연가나 병가를 내고 참여했다. 그 시간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수업이 아닌 만화와 같은 영상에 맡겼다. 교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책임은 회피한 셈이다.

물론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찬성한다. 지나친 악성 민원에 곳곳에서 교사들이 극단 선택을 한다. 더 이상 떨어질 데 없는 나락이라며 호소한다.

얼마 전 학교급식이나 돌봄에 종사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하라며 한 대규모 파업 때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근로 환경과 처우 개선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들 요구처럼 바꿀 부분은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않았다. 역시 자신들의 권리를 찾느라 책임은 뒤로했다. 아이들은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교사도, 교육공무직 노동자도,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교권이 무너졌다는 호소에 경기도교육청은 최근 ‘SOS 경기교육 법률지원단’을 꾸렸다. 고소당한 교사에게 변호사와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뼈대다. 도교육청 소속 교원이면 누구나 지원한다. 지난달 발표한 ‘교권과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교권보호센터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대책을 운영하고 추가로 발표하는 사이 용인에서 또 교사가 극단 선택을 했다. 사망에 이를 때까지 어떤 교권 보호 도움도 받지 못했는데 ‘신청이 없어서’가 이유다.

최근 일선 초등학교에선 체험학습 따위를 줄줄이 취소한다. ‘체험학습에 전세버스를 이용하면 위법’이라는 법제처 해석 탓이다. 해석은 코로나19 때인 지난해 10월 나왔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날 동안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핑계 중심에 학생은 없다.

학창시절 교권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넘사벽’(넘지 못하는 사차원 벽)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다는 ‘짓’은 언감생심이었다. 학생 권리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고 학생과 교사 지위가 뒤바뀌었다. 그 시간 떨어지는 교권을 바라만 봤다. 교육당국도, 교사도 큰 움직임이 없었다.

교권 회복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다시 1980년대로 돌아가선 안 된다. 누군가 권리를 높이자고 다른 이 권리를 팽개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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