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큰일 났어.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안 갚았다고 잡혀 왔어." 이른 시간 어머니는 큰아들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이내 휴대전화 너머 울부짖는 목소리를 듣고 크게 놀란다. 도통 울지 않는 아들이 통곡하면서 걸어온 통화 내용은 이러하다.

투자로 큰돈을 번 지인 꾐에 넘어가 대부업체에서 4천만 원을 빌려서 줬다. 하나 지인이 연락을 끊고 대부업체에 4개월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자 출근 도중 잡혔다고 한다.

놀란 어머니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바로 아들에게 전화했다. 이내 근무 중이어서 긴 통화는 어렵다는 아들 목소리를 듣고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챘다. 수화기 속에서는 대부업자가 아들 손톱을 뽑는다고 협박하던 참이었다. 아버지 기지가 아니었다면 금전 피해를 보고도 남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피해를 미리 막으려고 부모님과 여러 사례를 공유했다. 그러나 자식 신체를 해하겠다는 전화를 받고 이성을 차릴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기자 가족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누던 취재원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아빠 나 OO이야.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는데 수리비가 필요해’라는 내용이었다. 흔하디흔한 보이스피싱 수법이라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건넸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취재원 표정이 어두워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범죄는 2만1천832건으로 피해 금액은 5천438억 원이다. 2021년에 견줘 범죄나 피해 금액은 줄었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여전하고, 보이스피싱에 관한 연락을 받지 않은 사람이 적을 정도다.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겠다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생각지 못한 수법을 마주하면 피해자가 생긴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안타깝다. 일부에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계획범죄를 개인 부주위로 여기며 비난한다. 힘들게 모은 돈을 한순간 속아 날린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도리 없이 당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속이는 사람 잘못을 꾸짖기도 바쁜데 말이다.

당하고도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 가운데 이를 비관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진다. 영화 ‘보이스’에선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피해자를 궁지에 내모는 교묘한 수법으로 자행하는 사기 행각을 뿌리 뽑도록 경찰과 유관기관이 힘을 모으길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