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공동대표

오늘이 백로지만 아직 한낮은 덥다. 이럴 때 김밥 같은 즉석식품을 더 조심해야 한다. 긴장감이 떨어지면 상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식중독은 먹는 이를 괴롭히는 데 그친다. 같은 김밥을 먹었어도 멀쩡한 사람도 있는데, 상한 유기화합물의 독성은 먹이사슬을 타고 생태계로 퍼지지 않는다.

방사성원소는 다르다. 화합물에 포함됐더라도 썩지 않고 반감기가 10회 이상 지날 때까지 방사선을 주위로 내놓는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원소이므로 어떤 장치로 걸러낼 수 없고, 동위원소인 삼중수소는 반감기가 12.3년인 방사성원소다. 123년을 생각해 보라. 아주 낮은 확률이더라도 김밥에 삼중수소가 포함될 수 있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플랑크톤에서 먹이사슬을 타고 어묵이나 맛살에 들어갈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리 희석해도 삼중수소의 독성은 낮아지지 않는다. 내게 다가올 확률은 낮아지겠지. 하지만 같은 확률이 되풀이된다면 애초 확률은 의미를 잃는다. 123년 계속된다면 다가올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방사선의 안전기준치는 나라마다 다른데, 우리는 1년에 1밀리시버트다(mSv). 대략 1만 명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릴 확률로 해석한다. 3만 명이 들어찬 경기장의 관중을 향해 딱 3발의 총을 발사하면 안심할 확률인가? 총에 맞는다고 모두 사망하는 건 아니다. 스치고 말 가능성이 높아도 피하고 싶은데, 그런 경기장을 거듭 방문한다면?

수소는 생명체의 주요 구성성분이다. 물은 물론이고 단백질, 지질, 유전자, 피부, 세포, 장기를 구성한다. 오염수에 섞인 삼중수소는 우선 후쿠시마 앞바다의 생물에 포함된 뒤 신진대사를 거치며 몸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주위 세포에 방사능을 내뿜을 것이다. 빠져나가도 소용없다. 방류가 계속되는 한 다시 흡수할 수밖에 없고, 123년 이상 삼중수소는 먹이사슬을 타고 농축될 것이다. 플랑크톤에서 작은 어패류로, 큰 물고기에서 참치와 방어로 전달될 것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이다. 

병원 X선은 체외에서 몸을 스치고 나가지만 몸을 구성하는 방사성원소는 다르다. 주위 세포는 방사능 사워를 받는다. 전문학자는 스치고 지나가는 방사능의 수억 배 위험하다고 계산한다. X선도 위험해 되도록 피하는데, 몸에 방사성원소를 간직하면 어떻게 될까? 위험하지만 인과관계는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담배, 미세먼지, 온갖 유기화합물로 뒤덮인 복합오염 상황이기 때문인데, 거기에 방사능이 추가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핵오염수를 일본처럼 처리수로 수정해도 안심할 수 없다.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아무리 희석해도 생태계가 부담해야 하는 방사능의 총량은 3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어떤 핵의학 전문의는 "6천250억 년 노출돼야 기준치 수준"이라며 "방류 오염수가 국내에 미칠 영향 사실상 제로"라고 주장했지만, 핵오염수에 삼중수소만 포함되지 않았다. 훨씬 심각한 방사성원소가 수두룩하다. 배출이 허용된다면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핵발전소, 핵 추진 잠수함과 항모마다 용감해질 수 있다. 6천250억 배 이상의 방사성원소가 오대양의 농도를 높일 게 틀림없다.

얼마 전까지 산화탄소가 굴뚝으로 나와도 희석되니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이제 그런 말을 누구도 꺼내지 못한다. 대기에 포화한 이산화탄소는 회수할 수 없다. 생태계의 뭇생명이 고통받을 따름인데,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그리고 마이크로플라스틱이 포화하려 한다. 그 뿐인가? 농약을 비롯해 온갖 유기화합물도 마찬가지인데 여전히 살포한다. 전에 없이 병원 신세를 짓는 사람이 늘어나는 원인일 텐데, 사람의 평균수명도 늘어난다. 에너지와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의료수준을 믿으면 그만일까?

내년 세계지질과학총회가 개최되는 부산에서 현 지층의 이름이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바뀔 모양이다. 지층에 담긴 화석이 아니라 방사능이 그 근거가 된다. 1만1천700년 만에 지층의 이름이 바뀐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류가 터전을 심각하게 오염시켜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핵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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