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훈 ㈜에코인사이트 대표
정연훈 ㈜에코인사이트 대표

멋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처럼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자 패스트 패션은 급속도로 줄달음치고 변화한다.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고 몸을 보호하며, 필요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갖춘다. 사회, 성별, 종교, 관습, 신분, 사회환경에 따라 옷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 옷은 문화적 이유로 소비하는 상품 성격을 지닌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패션상품으로서 옷을 구입한다.

빠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전통 패션인 느림의 미학 같은 소중함에는 관심이 떨어진다. 소비자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해 유행에 따라 빠르게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이 주를 이룬다. 소비자들은 패스트 패션을 선두하는 유명 SPA 브랜드에서 유행하는 옷을 저렴하게 사고, 업체는 빠른 회전으로 재고 부담을 줄인다. 반면 옷을 만들고 관리·폐기하는 과정에서 쓰레기 양이 늘어나고 탄소배출량이 크게 늘어나 환경을 저해한다.

베를린의 싱크탱크 ‘한 오어 쿨 인스티튜드’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옷장 속 적정 옷가지 수는 상하의 74벌과 한 벌짜리 옷 20벌 정도다. 새 옷 구매는 연평균 5벌 이내를 권한다. 적정한 옷가지 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0개국을 대상으로 패션 탄소발자국을 분석하고 각 개인에게 공정한 탄소발자국 목표를 설정해 만들었다. 

보고서 저자들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 가운데 4%가 패션사업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탄소배출량을 보수적 추정치를 바탕으로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에 달성하려면 패션업계가 CO2e(이산화탄소 환산 톤)을 11억t으로 줄여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 컴퍼니가 제시한 2018년 수준인 21억t에 비해 약 50% 줄인 수치다.

2000년 이후 의류 생산으로 매년 1억7천500만t의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방출된다. 유엔에 따르면 패션산업은 전 세계 모든 탄소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다. 과거에 비해 합성섬유 기술력이 좋아져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환경문제가 수반한다. 모든 섬유의 60%를 차지하는 폴리에스터 섬유는 면을 제조할 때보다도 화석연료를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3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또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하는 옷이 약 1천억 벌, 버려지는 옷은 330억 벌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화학섬유로 만든 옷들은 분해하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방출하며 물속 미세플라스틱의 35%가 옷에서 나온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의류 생산으로 매년 물 800조L 소모, 이산화탄소 1억7천500만t 방출, 쓰레기 9천200만t이 발생한다고 한다. 평소 입는 티셔츠 한 벌을 만들려면 물 2천700L(욕조 15개 분량)를 소모하고 세탁 시 미세플라스틱 70만 개 방출, 분해 시 미세플라스틱 12억 개가 발생한다.

게다가 섬유산업에 쓰이는 면화는 세계 농지의 2.5%를 차지한다.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합성 재료를 만드는 데 매년 기름 3억4천200만 배럴이 필요하고, 염료 따위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1년에 4천300만t 든다. 더불어 염색, 가공, 원사 준비, 섬유 생산 단계의 화석연료를 에너지 기반으로 둬서 자원 고갈에 영향을 끼친다. 

세계은행은 온라인 쇼핑 성장으로 2030년까지 세계 의류 판매가 최대 65%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생산과 소비에서 이뤄지는 패션산업 전체의 환경오염 문제는 심각하다. 최단기간에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 내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패스트 트렌드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옷 소비를 줄이고 이미 구매한 옷을 버리지 않고 오래 입는 지속가능한 슬로 패션(Slow fashion)에 적응해야 한다. 슬로 패션은 친환경 소재와 염색 방법으로 환경과 인체에 악영향을 줄여 트렌드를 쫓지 않으며 오래 입는 패션을 말한다. 브랜드 차원에서 더 나은 노동환경과 재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제품 수명을 연장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을 사용하도록 지원하고, 제조업체가 적절한 환경규제를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국제적 규제를 들여와 패스트 패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패션업계는 패스트 패션으로 눈부신 발전과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고 여길 수 있다. 산업 발달에 따라 제약 없이 누구나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빠른 시간 내 편리하게 집에서 받는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구실을 넘어서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가치와 멋을 부여한다. 이런 긍정적 측면에 반해 환경오염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내세운 방법으로 특정 기술이나 방식 개발에만 치우치지 않고 근본적인 소비 트렌드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 패션 분야가 각광 받는다. 사용하고 버려진 의류, 천막과 같은 다양한 소재에 패션 요소를 더해 다채로운 디자인을 내세우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가 생겨났다.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중심축으로 모으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활발하게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

패션산업이라는 분야가 첨단산업과 같이 미지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기보다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마음으로 과거 독창적이고 멋들어진 패션을 현재와 조화롭게 만들어야 한다. 또 당초 의류가 지니지 못한 업사이클링의 특성과 감동을 담아낸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갖는다.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패션업계 중심으로 자리잡는다면 패션산업도 탄소중립과 더불어 ‘의류중립’을 실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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