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올 가을 첫 입문은 9월의 폭염 연장에서 시작했다. 와중에도 우리나라 미술계는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열리며 문화예술축제가 표현과 실험, 전시, 감상의 파노라마를 일으키며 잔잔하게 펼쳐졌다. 특히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뱅크시’의 행위예술은 액자 속 그림이 잘게 찢어지며 밑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관점의 차이, 반칙, 불법, 반사회성 같은 단어가 연상된다.

뱅크시 말고도 ‘주디스 바카’, ‘키스 해링’ 등 흔히 말해 길거리 예술이라 불리는 그라피티(graffiti)는 소통과 공유보다 반칙과 장애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특별한 미술 영역으로 이해되며 기발함과 차별화, 선도와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교과서식 사조가 아닌 자연발생적 문화예술 친화성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된 셈이다. 다른 관점으로 합리적 자기 생각 수용이 가능한 시대다.

얼마 전 어느 기관 주최로 ‘ESG 경영혁신’을 내세우며 포상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R), 기후관련재무정보공개태스크포스(TCFD), 레피니티브 같은 세계적 평가기관 지표 중 ‘본질적(substantive) 요소’만 골라 반영했다고 전한다. 한국의 법과 제도, 사회·국가적 이슈, 산업별 상황 등 글로벌 평가기준에 국내 기준을 최대한 반영시켜 공정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성평가는 외부 전문가를 위촉해 외부 평가단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산업별·유형별로 지표와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하며 훌륭한 모범 답안을 찾아가는 여정은 적극 지지하고 찬성한다. 다만, 지표는 말 그대로 방향성에 대한 동의로 이해되기 때문에 테두리식 경계와 구분만으로는 너무 많은 매몰 자산이 생길 염려가 크다. 중소기업의 경우 ‘본질적 요소’를 앞세우며 지금 당장 ESG 평가나 경영보고서가 필요한가? 중소기업 CEO들에게 ESG를 기반한 경영의 꿈과 판을 크고 넓게 펼쳐 줄 대안을 마련해 줄 필요는 없을까? 

몇 년 전 장애인들과 함께 인천시 서구 하천정비봉사활동을 이끌며 앞으로 나가고 있을 때 바로 옆 골프장에서 날아온 공에 장애인 한 분이 머리를 맞아 다쳤다.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참가자 모두 혼비백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치료비 청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포어(fore)"라고 외쳤는지 "볼(ball)"이라고 외쳤는지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원래는 서양식 그대로 "포어"라고 외쳐야 했지만 우리 골프들은 그냥 "볼"이라는 다급한 소리만 들려도 반사적으로 알아듣고 목 조아리며 등을 낮춘다.

며칠 전 라운딩 시 "볼"이라고 경고하지 않으면 가해자 책임 80%(종전 60%)라는 법원 판결도 나왔지만 ‘포어’든 ‘볼’이든 위험을 예측하고 알리고 관리하는 일은 기업 경영의 본질적 과제다. 어떤 과제든 일괄적 통제와 과녁 관리가 수반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소극적·의무적 도피의 메커니즘, 보호와 의존 속 퇴행이 오히려 참된 경영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음을 주지하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필자는 「중소기업 CEO ESG 자기주도 경영전략」이라는 384쪽짜리 책을 펴냈다. 마지막 교정을 앞두고 어느 지인이 선물한 책의 중간 제목을 책상 앞에 펼쳐놓고 내용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now&here) 대한민국 중소기업 CEO들이 ESG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준비해야 할까?에 대한 답이었다.

세계적 평가기관의 지표, 테두리적 지표만으로 정말로 공정한 ESG 평가가 이뤄져 지구환경과 사회적 가치, 모범 경영이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책 제목)’을 경험할 기반이 될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CEO들이 최선의 경영 전략을 마련하고 그 전략이 ESG를 성공으로 이끌어 가는 좌표가 될 근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책 마무리 정리를 위해 참고한 중간 제목은 ▶그래도 ▶아직도 ▶오히려 ▶비로소다. 민간 주도 자발성에 무게중심을 둬야 하고, 통제는 이제 더 이상 조직내재화의 황금률이 아니며, 기업경영인의 자기주도성을 넓혀 가는 최선의 방향성에 대한 자발적 동의가 비로소 이뤄져야 한다고 믿어 보자.

‘중소기업 CEO ESG 자기주도 경영전략’이 왜 필요한지 조병화 님 시 한 수로 답하고 싶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ESG 경영은 다른 관점으로 꽃피우는 합리적 자기수용이다. 자발적이고 독립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꽃피우게 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