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3인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를 꼽는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화가였지만 미켈란젤로는 유독 자신이 조각가라는 데 자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에타(1498~1499)와 다비드(1501~1504)는 르네상스 조각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명작이기 때문이다. 

향년 88세로 눈감을 때까지 17년간 바티칸 대성당의 건축 책임자를 역임했던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긴 했지만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다. 동시대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선배 레오나르도 역시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수려한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박학다식함으로 대중의 호감을 얻은 반면, 평생 독신으로 산 미켈란젤로는 성격이 독선적이고 다혈질이어서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했다. 외모 또한 그 외로움을 거들었다. 특히 삐뚤어진 코는 10대 견습생 시절 동료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얻어맞은 결과였다. 

미켈란젤로는 모든 삶의 열정을 예술에 쏟아부었다. 르네상스 대가들의 전기를 작성한 미술사학자 조르조 바사리는 다비드 상을 최고의 조각이라 극찬했으며, 영국의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화작품으로 꼽았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미켈란젤로’는 대가의 삶을 재현 다큐로 구성한 영상으로 그 시대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영화는 그가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드러낸 10대 시절부터 다룬다. 앞서 언급한 코가 부러지는 사건은 이때 발생한 일로,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화이기도 하다. 20대 미켈란젤로는 해부학에 전념한다. 이 시기를 혹독하게 보낸 결과, 그는 인간의 육체를 정교하면서도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구현하게 됐다. 이를 발판 삼아 그 천재적 재능은 24세에 두각을 나타낸다. 바로 성모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피에타 조각상을 통해 미켈란젤로는 스타 반열에 오른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은 인체 표현과 예수의 죽음을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표현한 방식은 역대 모든 피에타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 걸작이다. 

그의 나이 33세, 교황 율리오 2세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의뢰한다. 정식 회화 교육을 받아 본 적도 없는 그에게 까다롭고 고된 작업으로 정평이 난 천장화 의뢰는 그야말로 험난한 도전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4년 만에 ‘아담의 창조’를 포함한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20m 높이에서 완성한 이 작품은 가로 40m, 세로 14m의 거대한 천장화로, 바라보는 이를 압도하는 대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회상했다. 천장화 특성상 고개를 뒤로 젖힌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턱수염은 하늘을 향하고 목덜미는 뒤통수에 달라붙은 느낌이며, 튕겨 나온 물감이 온 얼굴을 덮고, 내 피부는 온통 피부병을 얻었네. 너무도 비참한 나는 이제 예술가도 아니네"라며 힘든 여정을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예술을 향한 숭고한 의지와 집념이 있었기에 위대한 작품은 완성될 수 있었다. 자신의 비전에 가깝게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한 작가의 모습은 완성된 걸작만큼이나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