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일 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바깥바람을 쐬려고 현관 문을 여니 복도 창으로 빨간 불빛이 번쩍번쩍했다. 궁금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파트 현관 입구에 119구급차가 대기 중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한달음에 1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소규모이고 서로 이웃사촌처럼 지내는 곳이다. 벌써 주민 몇 명이 모여 "무슨 일이냐?"며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몇 호 주민일까?’ 궁금해하며 경비실로 들어가 CCTV를 봤더니 들것에 실려 나오는 한 아주머니 모습이 보인다. 긴박하게 병원으로 이송된 아주머니가 무사하길 주민들은 기원했지만, 주민들 마음과 달리 그 아주머니는 응급수술을 받은 후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생사를 헤맨다는 소식이 들린다.

요즘 저녁 때마다 경비실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주민들은 "평소 건강하고 대꼬챙이 같은 아주머니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모두 남이 아니라는 심각한 표정들이다.

더욱이 한 아주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이 적은데 나를 데려가지 왜 젊은 사람을…"이라며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랐다.

주민들 모두 아주머니를 하루빨리 보길 고대했지만 추석 연휴를 코앞에 두고 결국 운명하셨다고 한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사람의 숙명이지만, 아직은 젊은 나이 축에 드는 그 아주머니를 떠올려보면서 새삼 인생무상(人生無常)의 허무감에 빠진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듯이 죽어서도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은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그 중 99%는 이 속담에 속하지 않는 듯싶다. 그럼 과연 나는 몇 퍼센트에 속할까? 하는 상념에 잠시 잠겨 본다.

불가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우리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 정도로 짧다고 이야기한다.

짧은 시간 사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를 되돌아봤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주변 지인들에게도 그렇고, 가장 가까운 아내마저 속상하게 한 일들이 생각나 후회막심하다.

더구나 직업 특성상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잘못된 세태를 지적하는 기사 때문에 나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훗날 고약한 사람이었다는 소리보다는 세상에 불의를 알렸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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