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자신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해야 한단 말인가. 젊은 시절 혈기도 아니고 인생을 알 만한 나이에도 기꺼이 위험을 선택하는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파미르 원정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파미르 원정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최고 높이 약 4천600m 고지 ‘악 바이텔 패스’에서 잠시 머물렀다. 모두 셔터를 누르는 사이, 70대 박 선생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동서남북 3번씩 모두 12배를 했다. 모두들 이 낯선 광경에 의아해했다. 그는 절을 마친 뒤 이렇게 설명했다.

"내 나이에 이렇게 높은 고지대에 올라온 데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합니다. 한국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절을 했지요…." 지리산을 거의 400회 올랐다는 그는 감사하는 마음, 자연에 겸손해하는 자세를 몸소 보여 줬다.

길을 재촉해 카라쿨 호수(3천950m) 인근 잘랑계곡 유목민 요르츠에서 불편한 밤을 보냈다. 4천여m 고지대에서는 밤에 잠을 잘 이룰 재간이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 오고 말조차 하기 싫었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다음 날이 기다려졌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오늘은 파미르 중앙부 바르탕 계곡을 따라 움직이는 일정이다. 차를 많이 타야 하는 날이다. 

바르탕 계곡은 예상보다 험했다. 우선 도로 곳곳에 강물이 넘쳐 길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1호 차 베테랑 가이드 알리와 채 대표는 선두에 서서 보이지 않는 길을 찾거나 차에서 나와 발로 물 깊이를 재 가며 차 방향을 이동하도록 했다. 차가 떠내려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뒤로하고 길을 찾아 건널 때는 일행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길에서 이미 다른 세 팀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소식도 들렸다. 고불고불 산길과 강길을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돌아간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험지 협곡 운전은 가슴을 자주 졸이게 했다. 심한 경사로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차는 악몽 그 자체였다. 계곡에서 절벽 아래 강물을 볼 때, 불어난 강물로 지프차가 보트처럼 요동칠 때…. 도대체 이 상황이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이런 위험에 노출하는 일이 과연 선택인가. 회의감이 몰려왔다.

일행 중 누군가 우리를 ‘파미르 탐험대’라고 이름 붙였다. 채 대표는 "앞으로 이런 투어는 없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런데 새를 좋아해서 세계 새 투어를 비롯해 트레킹을 다닌 임 선생은 다른 의견이었다. 그녀는 "몽골, 카자흐스탄 오프 투어도 다녔지만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바르탕 계곡 코스는 오프 투어 끝판왕으로 나는 200% 만족한다"고 극찬했다.

카라쿨 호수 안쪽 깊숙한 오지에서 드물게 또 다른 일행을 만나 길을 멈췄다. 이번에는 폴란드에서 자전거 여행을 온 사나이 두 명이 자전거를 수리하는 중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도움을 주려고 차를 세운 듯했다. 7호 차 운전기사 누르베키가 장비를 가지고 가 타이어 수리를 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느냐는 물음에 다소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3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고칠 장비와 물품을 모두 가지고 다닌다. 당신들은 바쁘면 그냥 가도 된다. 고맙긴 하지만 우리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채 대표는 "과잉 친절을 베풀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차 7대가 가던 길을 멈춰 도와 주는데,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시간과 노력이 낭비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곳 파미르고원에서 타지키스탄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는 일이 문화나 전통으로 보였다.

파미르의 험지로 악명 높은 바르탕 계곡을 흐르는 강.
파미르의 험지로 악명 높은 바르탕 계곡을 흐르는 강.

나는 파미르 트레킹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그대로 전달해 액티브 시니어들, 파미르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이런 곳도 선택지에 포함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보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르탕 계곡을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불편과 어려움은 감수할 만도 하겠으나 위험마저 감내하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며 채 대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옳은 말씀이다. 나도 여러 차례 파미르고원을 왔지만 바르탕 계곡을 포함한 중심부를 관통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소 위험하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은 없다고 본다. 여러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자 일행 중 부부가 함께 온 김 선생은 "이 코스는 조금만 수정하면 멋지게 다시 탄생할지도 모른다"며 "가능하면 살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

와이파이가 없는 곳,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 세상과 단절된 듯한 오지에서 10일이 넘어가자 대부분 가족과 연결하며 세상 소식을 궁금해했다.

일정을 하루 당겨 더 이상 요르츠에 머물지 않고 시내 호텔로 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먼지와 강물, 험로, 계곡을 뒤로하고 다시 핀즈강을 따라 칼라이 쿰부로 돌아가는 일정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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