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구실을 한다. 때문에 문을 잠근다는 건 외부 침입을 막고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킨다는 맥락이 있다. 올해 3월 개봉해 500만 관객을 돌파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이 들어오는 문을 닫아 비극적인 대참사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 스즈메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미 국내에도 막강한 팬덤을 보유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 작품은 ‘재난 3부작’의 최종 편으로 전작인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와 달리 실제 일본에서 발생한 대재난을 소재로 한다. 바로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다. 규모 9.0의 강진과 쓰나미로 1만5천여 명이 넘는 사망자와 50만 명에 가까운 피난민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슬픔에 잠긴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감독은 재난의 문을 단단히 잠그기 위해 기억의 문을 연다.

일본 남부 규슈 미야자키현 해안가 마을에서 이모와 단둘이 사는 스즈메는 간호사를 꿈꾸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이모와 함께 살게 된 시기는 12년 전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을 내려가던 스즈메는 눈에 띄게 잘생긴 한 청년을 만난다. 그 청년은 스즈메에게 인근에 있는 폐허 위치를 묻는다. 그렇게 소타와 첫 대면을 한 스즈메는 등굣길 내내 어디선가 본 듯한 소타의 인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결국 소타를 찾아 폐허가 된 온천으로 향한 스즈메는 덩그러니 서 있는 낡은 문을 발견한다. 문을 여니 펼쳐진 낯선 시공간. 하지만 그곳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발을 내디뎌 문을 통과해도 스즈메는 여전히 폐허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발에 걸린 돌 하나를 뽑게 되는데, 그 결과 거대한 지진의 기운을 막고 있던 봉인이 풀려 버린다. 등굣길에 만난 청년 소타는 재난의 문을 봉인하는 사람으로, 두 사람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에서 발생할 재난을 막고자 필사적으로 문을 닫던 스즈메는 잊었던 어릴 적 기억과 마주한다. 재난으로 엄마를 잃어 우는 다섯 살의 자신을 만난 것이다. 집도 엄마도 사라졌다며 목놓아 우는 어린 자신에게 스즈메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새까만 어둠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아침이 올 거야. 몇 번의 밤과 낮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빛 속에서 어른이 돼 있을 거야.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널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될 거야. 미래의 너는 행복할 거야. 나는 스즈메의 미래야."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모험을 떠나 성장하는 이야기로, 결국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은 사람과 연결된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문을 닫는 사투에 앞서 스즈메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사람들의 밝은 에너지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이들과의 만남은 스즈메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줬다. 이처럼 영화는 어렵고 힘든 일을 겪었더라도 공동체가 기억해 주고, 기다려 주고, 힘을 준다면 언젠가는 회복되고,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