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솔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최솔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정신이 지칠 때면 한 번씩 꺼내 보는 만화가 있다. 도대체 작가의 ‘행복한 고구마’다. ‘행복한 고구마’는 몇 년 전 도대체 작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재해 큰 인기를 끈 네 컷 만화다. 5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인기 덕에 도대체 작가는 ‘행복한 고구마’를 포함한 그림 에세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출간했다.

‘행복한 고구마’ 주인공 고구마는 인삼밭에 홀로 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인삼이라서 자신도 인삼이라고 여기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고구마가 스스로를 인삼이라 착각한 모습에 억울해진 인삼이 고구마에게 진실을 알려 준다. 그러자 고구마는 스스로가 고구마란 사실에 깜짝 놀라지만, 곧바로 ‘나는 고구마’라고 노래를 부르며 이전처럼 행복하게 살아간다.

도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고구마는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도 작가가 어느 직장에서 일하던 시절, 부서 6명 중 도 작가 혼자만 비정규직이었다. 그때 도 작가는 스스로를 인삼밭에 끼인 고구마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행복한 고구마’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도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7월부터 올해 말까지 커머스 플랫폼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됐다.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을 빼고선 제대로 사회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기에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기본이 되는 회사 분위기부터 팀원들과 관계, 내가 속한 부서가 하는 업무와 전체 프로세스, 업무에 주로 사용하는 툴 들 눈앞의 모든 일이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조금 긴장할 때마다 좋은 기회를 얻은 만큼 주어진 일을 꼭 잘 해내겠다는 열정이 마구 샘솟았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 같지 않았다. 같은 인턴 중에서 내가 가장 뒤처지는 듯싶었다. 이전에 몇 년간 회사를 다녔던 사람, 이미 엑셀 업무에 익숙한 사람과 달리 나는 회사 업무에 적용할 만한 경험도 스펙도 없었다. 

업무 하나를 인계받으면 전체 내용을 워드로 정리한 뒤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래도 모든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고 자꾸 실수를 저질렀다.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더욱 시야가 좁아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현장실습을 시작한 첫 2주는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우울해하기에 바빴다. 어떻게든 다른 인턴과 비슷해지려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부족함을 실감하는 꼴이 돼 더욱 초조해졌다.

그럴 때쯤 ‘행복한 고구마’를 다시 봤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내가 고구마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만화를 다시 읽어 보니 전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스스로 고구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인삼을 선망했다. 인삼 장점만을 부러워하며 인삼을 닮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본질은 바뀌지 않는데도 말이다.

인삼은 인삼대로, 고구마는 고구마대로 행복이 있다. 비록 인삼이 더 희귀하고 건강에도 좋지만, 고구마는 익숙한 채소인 만큼 인삼보다 다양하고 많은 곳에 쓴다. 고구마는 인삼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모두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처럼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가 정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고구마는 얼마든지 행복해지기도 한다. 비록 인삼밭에서 혼자만 고구마라도 말이다.

결국 나는 다른 인턴 장점만을 쫓으며 스스로 부족함을 탓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장점이 있고, 나는 나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느끼는 나의 능력치가 다른 사람보다 한참 낮더라도, 이는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모습에 만족한다면 인삼이라도 고구마라도 마음껏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