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을 떠올리면서 "소급입법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소급입법금지(遡及立法禁止)란 법령을 만들 때 그 법령을 이미 종결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을 말한다.

우리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형벌불소급, 일사부재리),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소급입법의 금지). 즉, 헌법은 형사처벌, 참정권 제한, 재산권 박탈의 경우에 한해 소급입법의 금지를 규정하며, 그 밖의 경우에는 합리성 여부에 따라 소급입법이 제한될 수도 있고 허용될 수도 있다. 즉, 소급입법이라고 해서 무작정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건 아니다.

소급입법은 ‘진정소급입법’과 ‘부진정소급입법’으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새로 만들어진 법령이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에 적용되는 경우를 가리키고, 후자는 새로 만들어진 법령이 현재 진행 중인 사실관계에 적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진정소급입법’은 금지되는 것이 원칙이며(단, 진정소급입법으로 인해 침해되는 상대방의 신뢰이익이 적거나 신뢰보호 요청에 우선시 되는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허용된다), ‘부진정소급입법’은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다(단,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 요청의 교량 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에 의해 입법자의 형성권이 제약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일반적으로 ‘부진정소급입법’은 개정된 새 법의 적용을 허용한다. 단, ‘부진정소급입법’이라도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기존 법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익을 비교형량했을 때 국민의 신뢰이익이 훨씬 큰 경우라면 헌법상 신뢰보호원칙 위반으로 새 법 자체가 위헌법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공익상의 사유에 비해 기존 법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익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에는 위헌법령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 중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규정(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이른바 ‘비진정소급입법’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소급입법금지를 위반한 것이다"는 주장은 부당하다. 

물론 ‘진정소급입법’이든 ‘부진정소급입법’이든 너무 자주 활용되는 것은 국민의 신뢰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소급입법에 의한 형사처벌, 권리제한·박탈은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되고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의 이념에도 반한다. 그러나 신법이 구법보다 당사자에게 유리한 경우 및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소급입법을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국민의 대표인 입법권자에게 광범한 입법형성권 부여).

참고로 친일재산귀속법(정식 명칭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1904년 2월)부터 국권을 회복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상속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인데,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2005년 12월 29일 제정됐다. 이에 반발한 친일파 후손들이 ‘소급입법금지의 원칙’ 위반을 이유로 헌법소원까지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친일행위로 인한 재산 환수 등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실현해 진정한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임무"라며 이들의 주장을 일축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귀속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진정소급입법이라 할지라도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이 소급입법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 "헌법 제13조 제2항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2011.3.31. 2008헌바14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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