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600일을 넘긴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지난 7일 발발했다. 끔찍한 전쟁으로 다치고 사망하는 피해자가 속출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전쟁영화를 소개한다는 게 야만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을 단순 오락용으로 전하는 것이 아님을 조심스레 밝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허무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1944년 6월 6일 개시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이자 연합군이 유럽을 탈환하는 첫 발판을 마련한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받지만 그에 따른 희생도 엄청났다. 특히 오마하 해변 전투는 바닷물이 피로 물들 만큼 참담했다. 당시 미 육군 제2레인저대대의 C중대장인 밀러 대위도 이 전투로 서른 명이 넘는 소중한 부대원들을 잃었지만 살아남아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한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어찌 보면 다소 황당한 이 작전의 배경은 이렇다. 라이언 일가의 4형제가 모두 참전한 가운데 3명의 형들이 전사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라이언 일병은 노르망디 작전 중 실종된 상황이다. 이에 미 행정부는 단 한 명의 아들만이라도 살려서 어머니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임무가 바로 밀러 대위에게 떨어졌다.

대위는 8명의 대원을 꾸려 임무 수행에 나서지만 전시 상황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실종된 병사 한 명을 찾는다는 건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뿐만 아니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 속에서 생면부지의 단 한 명을 위해 8명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또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밀러 대위는 대원들을 설득하며 임무 완수를 위해 라이언 일병을 찾는 고된 여정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부하를 잃고 항명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무참히 죽이는 전쟁터에서 얼굴도 모르는 한 사람을 찾아 무사히 돌려보내는 게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옳은 일이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낸 영화로 손꼽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초반 20분 동안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장면들이 쏟아진다.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오프닝은 전쟁의 지옥도를 머리로 인식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객의 몸속에 아프게 새겨 넣으며 깨닫게 한다. 이로써 반전 메시지를 강화한다.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함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애써 살려 준 독일군 포로가 무기를 갖고 다시 나타나 전투를 이어가는 상황이나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체코 병사를 무참히 총살하는 장면, 언제 죽을지도 모를 전장에서 어머니·아내·형제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강화된다.

영화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묘소에 참배하는 노년의 라이언 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장면은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에 앞서 소중한 생명들이 왜 그토록 많이 쓰러져야 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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