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서울이야?"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장소며,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기를 끈 맛집, ‘힙’한 전시·문화시설까지 위치를 확인하려고 스크롤을 내리면 어김없이 실망하는 탄식이 나온다.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서울로 잡은 날엔 왕복 2∼3시간은 지하철에서 시간을 허비할 생각에 나가기 전부터 피곤하다.

비단 향유할 문화자원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공공기관부터 일자리까지 탐스러운 인프라는 모두 서울에 몰리니 ‘서울공화국’이란 자조 섞인 ‘멸칭’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없이 팽창하는 ‘인 서울’ 흐름 속에서 용감히 ‘탈 서울’을 택한 이들이 있다.

"지역 격차에 따른 문화 종속을 끊어내고 내 동네에서 건강하고 재미 있게 사는 법을 고민한다"는 이종범 인천 스펙타클워크 대표를 만났다.

이종범 대표가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 4호 출간을 축하하며 활짝 웃었다.
이종범 대표가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 4호 출간을 축하하며 활짝 웃었다.

# 연결

1992년 부천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4살 때부터 쭉 인천 부평구에 살았다. 출생과는 상관없이 누가 고향을 묻거든 고민 없이 인천이라 답했고, 스스로를 ‘인처너’라 소개하는 데 익숙했다.

서울로 주 활동지를 옮긴 때는 스무 살 시절, ‘인 서울’ 대학을 진학하면서였다. 처음 입사해 인턴 활동을 마친 회사도 서울이었다. 친한 동료나 대학 친구들과 만날 때도 약속 장소는 당연한 듯 서울로 좁혀졌다.

사는 곳인 부평구에서 몇 시간을 걸려 서울을 오가는 기차 안에선 이따금씩 씁쓸한 기분에 잠겼다. "집은 어느새 잠만 자는 곳이 됐구나." 그러나 씁쓸함은 외려 동력이 됐다. 여러 동네 사람들이 서울로만 몰리는 상황이 이상하단 생각과 함께 익숙한 내 동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욕망이었다.

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글과 그림을 좋아해 두 가지 모두 포함하는 만화를 전공하고도 한 분야에 갇히는 기분이 싫어 대입에선 전혀 다른 전공을 택했다는 그는 "언제나 ‘어떻게 잘 연결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연결’은 작게는 글과 그림 들 자신이 가진 여러 재능을 접목하는 방법론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멀어지지 않겠다’는 건강한 삶에 대한 욕망이었고, 스펙타클 활동을 시작한 뒤로는 여러 작업으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거시 관계론으로 발전했다.

이 대표는 정동과 에너지 흐름을 외부로 뻗어 가며 자기 영역을 확장하는 데 능한 사람이었다. 그가 움 틔운 에너지는 어느덧 커다랗게 생동해 ‘스펙타클’이란 이름으로 인천의 어엿한 사회·문화 재원이자 대체 불가능한 광장이 됐다.

# 스펙타(他)클

‘스펙타클’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시기는 2016년, 동네 안에서 재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하려고 무작정 ‘인천 스펙타클’이란 이름으로 SNS 계정을 만들면서다.

선사시대 유적인 강화군 고인돌과 개항장 인근 근대 건축물들, 미래 도시를 표방하는 송도까지 광범위한 시대별 생활상을 모두 포함한 데다 공항·항만·섬까지 다양한 공간 형태가 공존하는 인천지역 특성을 표현할 말을 찾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관을 뜻하는 영단어 ‘spectacle’을 떠올렸다.

공식 외래어 표기에 따르면 ‘스펙터클’로 써야 하지만 다른 지역과 차별을 두고 인천만의 이야기에 집중하려는 취지로 ‘터’ 대신 ‘다를 타(他)’ 자를 넣었다.

SNS 계정을 만든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네 카페 탐방. 오늘날 카페는 단순히 차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문화 공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대표는 도자기 그릇에 담은 수제 꽃잎차를 맛보는 갤러리카페부터 120년 된 목조건물에 자리잡아 과거 문헌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고증·개발해 파는 카페까지 관내 숨겨진 보석 같은 개인 카페를 하나씩 소개했다.

스펙타클워크는 지난달 22일 인천시민애(愛)집 역사전망대에서 전시 ‘요즘, 인천, 책’을 열었다.
스펙타클워크는 지난달 22일 인천시민애(愛)집 역사전망대에서 전시 ‘요즘, 인천, 책’을 열었다.

그리곤 6개월 만에 SNS에서 소개한 카페 30여 곳을 권역별로 묶어 정리한 책 「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 인천 카페들」을 냈다. 출간 비용을 감당하려고 추진한 크라우드펀딩에서 목표치 2배를 웃도는 후원액이 모이자 이 대표는 ‘내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소박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어 그는 철거 예정이었던 중식당 건물을 문화·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공예가나 작가, 디자이너 들 인천지역 창작자들을 만나 인터뷰집이자 두 번째 저서 「인천의 창작자들(서울보다 멀고 제주보다 가까운)」을 내며 활동을 이어가다 2019년 ‘스펙타클워크’란 이름으로 회사를 정식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엔 1인 회사였지만 2021년 3월부터 인천을 주제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수제 모임 ‘스펙타클 유니버시티’를 운영하며 알게 된 참가자들 중 일부가 함께해 지금은 정규직원 2명도 생겼다.

또 모임 활동서를 기획하고 만들어 낸 결과물은 인천 로컬 매거진 「스펙타클」 발간으로 이어졌다. 느슨한 형태로 동참하는 편집부와 필진 10여 명이 힘을 보탰다. 잡지에서 ‘마계 인천’이란 오명을 다시 해석하거나 요리 위주로 인천 식문화를 조명하는가 하면 인천지역 특성과 인천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았다.

해마다 두 기수를 모집한 ‘스펙타클 유니버시티’ 참가자는 현재까지 모두 200명에 이르고, 이들 모두 땀방울을 조금씩 모아 2021년 10월 창간한 잡지 「스펙타클」은 오는 11월 어느덧 4호 발행을 앞뒀다.

4호에선 강화군 낡은 주택에 사는 음악가부터 미추홀구 상가건물을 개조해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아이들도 키우는 부부까지 인천지역 다양한 주거 형태와 라이프스타일을 다룬다.

‘어떻게 하면 인천 동네에서 재미 있게 살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활동이 도서 출판, 행사, 전시는 물론 로컬 브랜딩과 콘텐츠 기획을 공부하는 교육 커뮤니티로까지 그 영역을 넓힌 셈이다.

인천시민애(愛)집에서 열린 인천독서대전 참가자들이 ‘요즘, 인천, 책’ 전시를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인천 스펙타클워크 제공>
인천시민애(愛)집에서 열린 인천독서대전 참가자들이 ‘요즘, 인천, 책’ 전시를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인천 스펙타클워크 제공>

# 로컬 브랜딩

이제는 로컬 브랜딩을 배우려고 이 대표를 찾는 이들도 생겼다.

그는 지난 8월 1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이 주관한 ‘에브리웨어 기업가정신 캠프’와 7월께 오즈인터랙티브㈜가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로컬 창작자 양성과정:빌리지 러너’에 초청받아 2차례 강연을 마쳤다.

"로컬 브랜딩에서 중요한 부분이 뭔가"라는 질문에 이 대표는 "지역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 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며 기획자 윤리를 강조했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이익만 취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 지역에 무얼 남길지,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역마다 접근법이 달라야겠지만 인천은 30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로, 주민들이 지역 자원을 백분 향유한다면 관광산업에 치중할 필요가 없다"는 이 대표 설명엔 오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결국 로컬 브랜딩이나 관광산업이 필요한 이유를 묻는다면 물음 끝단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궁극의 명제가 아니겠나.

"오오, 나의 사랑 인천." 이 대표는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단이라며 인천 유나이티드를 소개하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응원가를 불렀다.

역시 무슨 일이든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면 윤리는 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그가 사랑 어린 시각으로 보여 줄 또 다른 인천의 면면들과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윤소예 기자 yoo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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