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된다. 가족관계도 그렇다. 연애 시절의 떨림은 결혼 후 편안함으로, 모든 것이 어설프던 새내기 부부의 가계 살림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서로 타협하고 맞춰 가며 자리잡는다. 그러나 어느 특정 시기를 넘어서면 이런 균형은 깨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희생이 묵인되는 때가 오는데, 대체로 아내이자 어머니가 그 무게를 짊어지곤 한다. 

아버지와 함께 든든하게 가정을 지탱하는 양 축이 어머니지만 특별한 계기나 자극이 없는 한, 어머니의 수고는 그저 당연하게 치부돼 묻혀 버린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다. 한평생 참아 온 시절을 뒤로하고 더 이상 가슴에 묻어 두지 않고 그때그때 말로 풀어가며 산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오말순 여사도 그렇다. 칠십 평생을 참고 희생하며 억척스레 살아온 그녀는 이제 큰 목소리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속 시원히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함께 사는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려는 속내를 알게 된다.

사연은 이렇다. 일찍이 남편을 잃은 오말순 여사는 홀로 힘겹게 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번듯한 국립대 교수가 된 아들은 오 여사의 자랑이자 기쁨의 원천이었다. 이러다 보니 함께 사는 며느리에게 쉽지 않는 시어머니였다. 그 결과, 갱년기 우울증을 앓는 며느리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고, 보다 못한 아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결심을 하게 된다. 상황을 알게 된 오 여사는 삶에 회의를 느껴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다. 촬영에 앞서 처음으로 곱게 화장을 한 그녀는 "50년은 더 젊어 보이게 찍어 주겠다"는 사진사와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며 촬영을 마친다. 

이후 오말순 여사는 거짓말처럼 20대로 돌아갔다. 사는 시대와 연륜은 유지한 채 외형만 변했다. 황당함에 사진관을 다시 찾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이에 오말순은 아예 집을 떠나 즐기지 못한 청춘을 누리기로 마음먹는다. 오 여사는 그간 모아 둔 쌈짓돈을 자신을 위해 쓰며 스물한 살 오두리로 거듭난다. 뽀글이 파마와 펑퍼짐한 옷을 벗고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 룩으로 깜찍하게 거듭난 오두리. 그녀는 심금을 울리는 가창력으로 소싯적 꿈인 가수에 도전한다. 그 뿐만 아니라 멋지고 다정한 남성과 가슴 설레는 데이트도 하며 청춘을 만끽한다. 

그러던 중 오두리의 젊음과 손자의 목숨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 발생해 오 여사는 딜레마에 빠진다. 과연 그 선택은 어떻게 될까?

전 세대가 공감할 법한 가족영화 ‘수상한 그녀’는 우리네 어머니의 노고와 깊은 사랑을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작품이자, 그 수고와 희생에 감사와 위로를 표한다. 또 가족 간 이해와 배려, 부드러운 소통을 통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방안도 제안한다. 비록 전반적인 서사는 상투적인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매끄러운 연출과 주연·조연의 뛰어난 연기 호흡, 특히 20대가 된 70대 할머니 역을 찰떡같이 소화한 심은경의 능수능란한 연기는 보는 즐거움과 몰입감을 더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