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강남에서 친구를 만났다. 네온사인이 별처럼 반짝이는 거리를 지나 세련된 이자카야에 자리를 잡고 한 품목마다 3만 원을 웃도는 안주를 주문하니 새삼 서울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2시간은 떠들었을까. 둘은 담배를 피우고 하나는 화장실로 가면서 슬슬 2차로 자리를 옮기려는 듯 어수선한 때였다. 울리는 진동에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엄마에게 온 전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묘하게 무겁고 떨렸다. "너 지금 어디니?" 짧게 머뭇거리다 뒷말이 이어졌다. "혹시 핼러윈 축제 가지는 않았지? 사람 많은 데 다니지 마."

딸이 서울에 놀러갔다는 정보와 10·29 참사 관련 보도가 염려로 합쳐진 모양이었다. 엄마를 안심시킨 뒤 술자리를 이어갔으나 마음 한편은 이미 가라앉았다. 부러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더 크게 깔깔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웬 중년 남자가 크게 악을 쓰며 거리를 배회했다. 쉰 목소리가 애잔해 뭐라 말하는지 들어보려는데, 같이 길을 걷던 친구가 옆에서 팔짱을 조였다. "괜히 눈 마주치지 마. 해코지하면 어떡해." 기자는 눈을 떨구고 걸음을 재촉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도착한 집 현관엔 택배상자가 놓였다. 엄마가 낮에 보낸 문자가 떠올랐다. ‘시킨 적 없는 택배가 왔다니 손 대지 말고 두라’는 내용이었다. 택배상자를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장 앞까지 마중을 나온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이모 왔어" 하고 인사를 했다.

집에 잘 왔다. 사람이 압사당해 아우성치던 이태원 거리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른 불상의 남자나 발신자 모를 택배를 열었다 화학 테러를 당한 이들 같은 이미지들은 애써 모른 척 지나쳤다.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 휴대전화를 켰는데 하필이면 검은 리본 사진을 올린 친구 프로필이 눈에 띄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리본이 뜻하는 바는 고유했다. 이제는 리본만 봐선 정확히 누굴 추모하는지 알기 어렵다. 기려야 할 넋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일상은 많이 변했다. 우리는 집단 트라우마를 이겨 낼 방법으로 모른 척을 택했을까. 범람한 죽음이 버거울수록 더 크게 웃는 서로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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