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햇볕이 잘 드는 들이나 냇가에 수북하게 모여 자라며 키가 약 1m쯤 되는 8∼9월에 피는 ‘고마리’라는 꽃이 있다. 잎의 모양은 서양 방패처럼 생겼으며, 하얀색 바탕에 연분홍색이 퍼져 나와 서로 색을 섞으며 다양한 자태로 눈길을 끈다.

고마리꽃은 번식력이 뛰어나 닿는 줄기마다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며 금세 군락을 이룬다고 한다.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 꽃은 그 왕성한 뿌리내림으로 오염물질을 흡수해 물을 맑게 하고 주변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전해진다. 키가 작은 이 꽃은 그 키에 맞게 수변을 정화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큰 강이나 호수에는 기대 못할 생태계 카테고리에 맞는 크기다. 

최근 ESG에 대한 기업평가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기관과 문제는 있지만 부문별 평가 비중을 대략적 범위로 공개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기관이 있다. 평가항목 가중치를 공개하지 않아 ESG 경영 지표 개선 노력의 우선순위가 불투명하다고 주장하며 다른 글로벌 평가사들은 항목별 비중과 가중치를 1% 단위로 정확하게 공개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평가사는 대략적 범위로 투명성 보장을 위해 노력 중이며, 평가 결과에 대해 기업들이 충분히 소명할 기회를 준다고 해명했다. 

이렇듯 제대로 된 ESG 평가, 평가항목, 평가지수는 아직 많은 문제들을 노정하며,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현실을 보여 주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불완전한 글로벌 이슈에서 벗어날 현실적 상황 논리와 대응 방안이 ‘힘의 논리’ 또는 ‘강자 논리’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영국 민간단체 ‘더클라이밋그룹’은 재생에너지 100%로 기업 생산활동을 도모하라는 ‘RE100’ 개념을 제안하며 정부 강제가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 역시 수출 전략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감안해 재생에너지 조달 활성화를 권한다. 산이 많고 좁은 땅보다 정부 규제가 너무 많아 그 규제 완화에 앞장서라고 주문한다. 일리가 있다. 수출대국 우리나라는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키우고 또 해결해야만 EU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탄소세를 피하며 실질적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유럽의회는 2024년부터 ‘지속가능성보고 지침(CSRD)’을 도입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기업들도 당연히 CSRD 영향을 직접 받게 된다. 다만, 결의안 통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복잡하고 양이 많아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직된 관료주의적 환경법규가 EU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어쨌든 유럽에서는 내년부터 ESG 보고지침이 도입되며, 공시 의무 기업은 5만 개로 확대된다고 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공시 의무화 시기 연기를 요구하고,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금융위 역시 ESG 공시도입을 1년 이상 연기하겠다고 한다. 나라마다 기준도 지침도 제각각 다르고 규제 목소리만 높다. 

6월 발표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후리스크 등 비재무적 공시를 허위로 하게 되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제재 조치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다시 정리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직시하자면 평가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자 기업에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겠다는 답이다. 기업이 소명할 사항인가? 추진하고 성과를 내며 수정·보완·개선을 해야지, 소명 기회만 준다고 문이 열리지는 않는다.

RE100 역시 규제와 재생에너지 생산 역량 강화 두 가지를 다 보고 접근해야 할 사안이지 그냥 EU에 수출을 하려면 생산에너지 모두를 재생으로 하라는 상대성에 배치되는 강자 논리 화법이다. 생산 방식과 채널, 경제성, 지구환경 등 모든 것이 복합적 요인과 결과로 평가받고 달성하며 주변과 질서를 지켜 가는 것이다. 

ESG 공시 기준에 참고가 될 국제회계기준(IFRS) 자료 역시 아직 최종 제시된 것이 없고, 당장 확정되더라도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타이밍이다. 중소기업 역시 당연히 대기업과의 연계 시스템으로 직접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을 테다. 너무 막연하고 모호한 공시 개념, 불명확한 기준이 앞에 놓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여기저기서 ESG 교육, 더 나아가 기업실무자의 인식 전환과 개념 확산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나선다. 과거 현장 실무자들 관점에서 나온 TQC나 6시그마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ESG는 CEO의 몫이고 철학이다. 투자자 최상층에서 투자수익을 위해 펼친 판이 ESG인데, 중소기업에게 또 중소기업 종사자에게 또다시 보이지 않는 굴레를 씌우며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고 할 텐가? 지금껏 해 오고 앞으로도 해 나갈 것이다. 1m짜리 고마리 꽃이 뿌리를 뻗어 그에 맞는 하천이나 냇가 수질을 정화시키듯 그렇게 기업과 종사자들은 그 크기에 맞게 ESG를 이행해 나갈 것이다. ESG 경영은 CEO의 기업(起業)철학과 깨어 있는 경영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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