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개봉한 흑백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논란을 빚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다. 그 까닭은 소위 말하는 20세기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시민 케인’을 물리치고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상만이 아니라 감독상, 촬영상, 미술상에 있어서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존 포드 감독이 선사한 이 가족 멜로드라마는 개봉 당시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놀라운 걸작"이란 평가와 "산발적인 에피소드", "눈물과 석탄가루의 흉측한 뒤범벅"이라는 극단적인 비평을 받은 바 있다. 여러모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만나 보자.

영화는 지난날을 추억하는 한 남성의 기억을 따라간다. 19세기 말 영국 웨일즈, 작고 소박한 탄광 마을은 시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산다. 하나 그 반복은 지루함이 아닌 안정감과 평온함을 줬다.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는 광부들의 힘찬 노랫소리도 마을에 활력을 더했다. 모건 가족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탄광에서 일했다. 정직하게 노동한 대가는 그날그날 일당으로 받고, 퇴근 후 함께 몸을 씻고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다. 6남 1녀 중 막내인 어린 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조금은 엄격하지만 현명한 아버지는 집안의 머리였고, 다정하고 유쾌한 어머니는 가족의 심장이었다. 큰형이 가정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모든 형제가 비슷한 순서를 밟으며 살아가리라 믿었던 휴의 예상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면서 변화의 물살을 탄다. 노동자 권익 보호를 주장하며 노조를 제안한 형들과는 달리 아버지는 임금이 조금 줄어도 가계에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 아래 반대를 표명한다.

파업이 장기화하자 모건의 아버지는 다수와 의견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주민의 적으로 낙인 찍힌다. 한 가족 같았던 마을 공동체의 따스했던 기운은 생각보다 빠르고 잔인하게 차가워졌다. 그런 중에 막내 휴는 동네 최초로 공립학교에 입학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의사나 변호사가 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어렵고 힘든 광부의 길을 택한다. 이로써 모건 집안의 일곱 남성 모두가 석탄을 캐며 소박한 행복을 꿈꾸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태 악화로 해고된 두 형은 새 직장을 찾아 집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큰형과 아버지마저 갱이 무너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다. 한없이 푸르게 시작했던 휴의 유년기는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 해체로 종말을 맞이한다.

저물어 가는 탄광촌의 몰락과 함께 자연스레 한 시대를 마감하는 영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짙게 깔린 작품이다. 중년이 된 휴가 고향 마을을 떠나기 전 회상하는 과거 모습은 무너진 낙원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가족의 품격이 살아있던 푸르른 시절,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배운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사랑의 가치에 추억은 뿌리내렸다. 다만, 휴의 기억을 토대로 에피소드가 나열되기 때문에 극적 인과관계가 다소 헐거운 측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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