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조 전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
박영조 전 인천전자마이스터고 교장

1979년 6월 병리학자 로빈 워렌은 환자 위(胃) 속에서 박테리아를 발견한다. "산성이라 세균이 살 수 없다." 1천 배 확대 사진을 앞에 두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동료들이었지만, 남들과 달리 확신을 가진 워렌이 위에서 발견한 박테리아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었다. 그는 위장병과 박테리아의 관계를 의심했다. 신입 연구원 베리 마셜이 유일하게 연구에 동참했는데,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헬리코박터균 발견으로 웨렌과 마셜은 노벨 생리의학상(2005)을 수상한다. 

수년간 세계적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연구논문을 송부했으나 "박테리아는 위 속 생존 불가, 연구 자체가 잘못됐다"며 심사위원 전원이 게재를 반대한다. 심사위원들을 설득시킨 논문 편집장 이안 먼로는 "가설이 맞다면 이 연구는 매우 중대한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이미 1967년 하버드 의과대학 한 교수에 찍힌 헬리코박터균 사진이 학술지에 실려 수만 명이 봤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못했다. 일본·이탈리아·독일에서도 이미 위 속에 나사 모양 균 발견 기록이 존재했는데, 사실 보고도 못 본 사람들인 셈이다.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셔브리 교수와 일리노이대학 대니얼 사이먼스리 교수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에서 농구공을 패스하는 두 팀이 나오는 짧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한 팀 학생들은 흰색 셔츠, 한 팀 학생들은 검은색 셔츠를 입게 했다. 동영상 시청자들에게는 흰색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라는 지시를 내린다. 영상을 다 본 후 "혹시 고릴라를 봤나요?"라고 물었고 절반 이상은 "보지 못했다"고 응답한다. 

영상 속에는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학생들 사이를 활보하며 통과한다. 고릴라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참가자들은 놀란다. 고릴라를 못 본 이유는 ‘무주의 맹시(無注意 盲視)’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집중할 때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으려는 뇌의 특성으로 인해 나타난다. 인간의 뇌는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패스 횟수를 세는 데만 집중해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또 실험에서 기업 임원들일수록 고릴라를 잘 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장사가 잘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느라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전문가일수록 틀에 박힌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리처드 왓슨은 실험 의미에 대해 "우리는 명백한 것조차 못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뭔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며 실험의 핵심은 우리 관심이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관심은 유한하며,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지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셔브리와 대니얼 사이먼스리는 "주의력 사용은 제로섬게임과 같다. 무엇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것에는 당연히 주의를 덜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무주의 맹시는 주의력과 인식이 정상 작동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산물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왜 나는 눈앞의 고릴라를 못 보았을까?」의 저자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고릴라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게 눈앞의 기회를 놓치는지 보여 준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의미는 인간의 지각 한계와 착각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눈뜬장님이 되는 이유는 ①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 ②고정관념 ③지나친 스트레스 ④익숙한 것은 무시해 버리는 태도, 4가지 마음의 덫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오늘날 극우·좌파 꼰대피아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릴라는 숨겨진 눈앞의 기회인 것이다. 눈앞에 감춰진 성공 기회를 알아채는 방법은 ①고릴라를 당신이 보고 싶다는 목표의식 ②고릴라라는 고정관념을 싫어하며 ③느긋하고 즐거우면 고릴라가 보이고 ④가끔은 방법을 바꿔야 고릴라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선명하게 찍힌 헬리코박터균이 있었지만, 기존 의학지식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빠른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경험과 지식이 때로는 창조와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경험과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첫째, 정기적으로 개인·공동체의 노하우와 정보를 공개해 비우자. 학교 관리자 시절, 학교 교육과정과 운영 프로그램을 「인재대국, 인재 요람기Ⅰ·Ⅱ」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고, 전국 마이스터고에 학교를 개방하고 정기적으로 노하우·정보를 공개한 후에는 학교 TF가 샘물처럼 새로운 방법을 구안·검토해 새 프로젝트를 수혈했다. 

둘째, 항상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며 겸손하자.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의 제임스 키팅 박사는 다른 의사가 발견하지 못하는 희귀병, 특이한 원인을 찾아내기로 유명하다. 실력은 기본에 항상 ‘확실치 않다’는 생각이 있어야 배우려는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새로운 걸 보는 눈이 생긴다. 

셋째, 익숙한 것을 떨쳐버릴 수 있을 때, 사람 중심의 변화를 이끌어 내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방법은 그동안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지만… 성공 법칙을 맹신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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