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을 했다. 대학 시절 인턴을 비롯한 각종 대외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 눈여겨본 학교 선배가 여성지 인턴 자리를 추천했다. 고맙다며 거듭 마음을 전하고 회사를 찾아 면접을 봤다. 그리고 1년에서 한 달 빠지는 기간 일할 기회를 얻었고 넙죽 근로계약을 맺었다.

휴학을 하려면 지도교수 서명을 신청서에 받아 학교에 내야 했다. ‘졸업 전 사회 경험’이라고 이유를 적은 신청서를 들고 만난 지도교수는 쉼 없이 쭉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기를 바랐다. 하나, 휴학을 향한 굳은 의지에 교수는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하고 오나 보자"라며 휴학 신청서에 자신 이름을 적어 건넸다.

휴학을 하자마자 회사에 출근하면서 첫 달은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머지 기간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일이 서툴러서 죄송합니다. 실수해서 죄송합니다. 밀린 업무를 하느라 점심을 같이 못 먹어서 죄송합니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고 받아서 죄송합니다. 스테이플러를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찍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할 일도 아닌 일에 버릇처럼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죄송’을 들을 때까지 몰아세우는 말을 쏟았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사수도 상사에게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마침 일에 서툰 기자가 눈에 띄었고, 자신의 마음을 풀 대상으로 여겼다고 추측한다. 그 뒤에도 버릇처럼 사과를 했다. 다른 회사 인턴으로 근무를 해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말이다. 그러다 못된 버릇이 생겼는데, 무미건조한 사과로 불편한 상황을 무마하기도 했다. 그만큼 얕잡아 보는 사람이 더러 생긴 뒤로는 불필요한 사과는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사과를 종종 받는다. 부탁을 했는데 ‘죄송’하지만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부탁을 거절하면 그만이지 왜 사과를 할까 싶어 "전혀요"라고 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사과를 했는지는 안다. 그들 잘못을 지적하려는 취지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다른 이의 사과로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이제껏 별 볼 일 없는 일에 쉽게 건넨 사과가 무슨 뜻일까. 과거 대단한 경험으로 얻은 버릇 덕분에 말 한마디를 내뱉거나 글을 쓸 때 쉽게 생각하지 않고 상황에 맞는 단어를 고르고 골라 진심을 전하는 데 힘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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