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매력 중 하나는 과학과 징크스 둘 다에 몰입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팬들은 응원하는 팀 타자 타율부터 세이버메트릭스로 통계 낸 WAR까지 줄줄 외는 동시에 구장을 돌며 소금을 뿌린다. 어느 선수는 타격을 마치고 돌아간 덕아웃에서 헬멧과 장갑 따위 장비를 제단 쌓듯 차곡차곡 올리고, 감독은 16연승 내내 면도를 하지 않고 같은 옷을 입는다. 구단은 수십 년 전 내쫓은 염소 때문에 우승을 못한다며 구장 안으로 염소를 불러들인다.

기자도 자잘한 징크스라면 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신문 볼 때 사용하는 색연필은 그날 가장 먼저 눈에 띈 색을 집어야 하고, 어느 요일엔 특정 브랜드 옷을 피하는 식이다. 나름 데이터로 통계를 낸 유비무환이다.

그런데도 예상을 벗어나는 일 앞에선 운명론자로 돌변해 ‘그런갑다’ 하고 넘긴다. 좋든 나쁘든 ‘그럴 운명이었는갑다’ 하면 편하니까. 그 과정에 스스로 의지나 능력은 생각 안 했다. 없어도 무방한 셈 쳤다.

기호일보에 면접을 보러 가던 날도 그랬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무겁고 기다란 코트에 얼굴을 파묻고 구월동을 걷다가 빙판길 위에 그대로 미끄러졌다. 일어나 옷을 털면서 든 생각은 ‘안 되려는갑다’였다.

운 좋게 붙어 출퇴근하던 어느 날 ‘서해안’을 쓰게 됐다. 주말이면 노트북 들고 동네 카페를 옮겨 다녔다. 여기 앉으면 조금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를까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밥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 따위 하나 마나 한 얘기 삼가라는데, 어째 ‘착하게 살아야 하는갑다’ 같은 글만 써졌다. 아무튼 써 냈다. 애썼다는 말에 감사인사를 드렸다. 돌아온 대답은 "나한테 말고 네 능력한테 감사하라"였다.

만화가 고다 요시이에는 저서 「자학의 詩」에서 말했다. "이제는 행복도 불행도 상관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기구한 주인공의 삶에 독자마저 페이지 넘기는 일이 자학처럼 괴로운 이 만화는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시가 된다.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잃고, 또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습니다. 단지 인생에 흐르는 엄숙한 운율을 음미할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요즘엔 ‘그런갑다’에서 나아가 ‘운율이 있으려는갑다’ 한다. 한 해 144경기 치르는 프로야구도, 살면서 무수한 승패를 겪을 기자도 앞으로 끊임없이 징크스에 시달릴 일이 뻔하다.

살다 보면 기자가 친 병살타로 앞선 주자까지 아웃당하고 마는 날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반대로 외야 플라이로 잡힐 줄 알았던 공이 기어코 담장을 넘어가는 짜릿한 날도 있겠다. 그러면 기분 좋게 홈까지 달려와 여느 때처럼 장갑과 헬멧을 제단 쌓듯 정돈하며 감사인사를 드릴 테다. 그 사이에서 가끔은 한 번씩 떠올리련다. "네 능력한테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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