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교육의 모든 답은 학생 안에 있다. 학생을 보면 모든 교육문제를 연계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단순한 사실을 망각한 채 지금까지 모든 교육정책을 학생이 아닌 어른 위주의 사고와 처방으로 파행을 자초했다. 이는 아이들의 행복한 배움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위정자들은 여론과 민의에 밀려 그때마다 교육개혁을 내세웠으나 바람직한 민주시민 육성이란 교육목표와는 거리가 먼 변질된 정책이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묻고자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과연 행복한가? 그들이 ‘이생망’을 외치고, 매년 5만 명이 훨씬 넘는 학교 밖 청소년을 양산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청소년 자살률을 기록하고, 매년 증가하는 N수생은 SKY 중심 대학서열 체제와 학벌사회의 희생양이란 관점에서 볼 때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거기에다 최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진학반’을 운영하고 연간 26조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현실은 더욱 불행하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최우선의 교육정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시금 그 답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찍이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어른을 만든다"고 했다. 이는 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국가를 세우는 교육입국의 기반이기도 하다. 예컨대 덴마크나 독일처럼 ‘행복교육’ 제도화를 통해 아이들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상기 국가의 국민행복지수가 연 세계 1위를 유지하고 학창시절이 매일매일 축제와 같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명백한 인과응보이자 사필귀정의 결과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마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국민적 참여와 행동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국 학교마다 비전으로 내세우는 ‘행복한 학교’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지금 같은 경쟁교육 하에 행복을 위장해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협력과 연대를 가르치고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과 나눔과 배려를 우선하고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는 ‘행복교육’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초·중등학교에 교부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국세의 20.79%)을 본래 목적을 위해 삭감(2024년 교부금 7조 원 삭감 예정)이 아닌 증액해야 한다. 아직도 전국 많은 학교는 내외적으로 교도소와 다를 바 없다. 오래된 건물은 낡고 비가 새어 보수하지 않으면 입실이 불가한 경우도 있다. 40년 이상의 학교 건물에 우선적인 국가 주도의 공간혁신 사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서구 선진국의 학교 시설은 아이들이 행복한 생활의 근거지다.

또한 학령인구는 줄어도 교육의 본래 기능과 미래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서 교사 정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교사 정원도 감축한다는 단순 경제논리는 우리 교육을 망치려 한다. 과연 이 나라에 백년대계교육은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거시적인 안목으로 교육예산은 비용이 아닌 투자여야 한다.

이제는 교육 관료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교육 가치 변화도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학벌사회의 노예로 고통스럽게 살기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행복한 어른이 된다’는 명제 확립이 절실하다. 아이들은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는 비판의식으로 행복 유형을 익히고 습관화해야 성인이 돼서도 행복한 삶으로 연계할 수 있다.

행복한 학교는 학교문화에서 만들어진다. 소통과 공감이 이뤄지는 학교의 교사는 행복할 것이다. 교사가 행복하면 학생도 행복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행복하다면 그 학교는 마침내 ‘행복한 학교’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정책은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온 국민의 관심과 참여, 행동으로 입시 위주 경쟁교육을 폐기하고 디지털 대문명 시대에 맞는 소통과 공감, 상상력과 창의 역량을 갖춘 세대로 키우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소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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