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급감과 함께 지난해 4분기(-0.3%) 마이너스였던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0.3%), 2분기(0.6%), 3분기(0.6%) 연속으로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수출·소비 공히 직전 분기보다 늘어난 결과다. 정부는 4분기 0.7%에 도달하면 올해 전망치(1.4%)도 가능하리라 내다봤다.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반도체가 바닥을 친 후 나아지고 수출 회복세도 강해지는 모습"이라며 "최근 야권에서 제기하는 경제 폭망론 내지 국가 부도 위기는 현재 흐름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경제부총리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R&D 예산부터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정부 발상은 세계경제 흐름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듯해 걱정이다. 수출 전선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급변 중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대중 수출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온 우리가 2020년 타이완에 자리를 내주더니 올해는 미국·호주·일본의 추월까지 허용하며 5위로 주저앉았다. 중국과 경합하는 산업이 늘어나며 중간재 수출은 급감하고 수입은 급증했기 때문이다.

대미 수출도 좋은 흐름이 아니다. 대중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의 공급선 다변화 정책으로 피해가 심각하다. 우리는 미국이 정한 룰을 따라가는 만큼 반사 효과를 거둬야 대중 수출 급감에 대한 손실을 상쇄한다. 안타깝게도 가장 혜택을 받는 곳은 북미자유무역 협정국이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1~2위를 다투고 그 뒤를 중국·독일·일본이 쫓는 양상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자명하다. 산업 경쟁력과 요소 생산성이 추락하고, 그나마 우위를 점한 선도산업마저 추월 당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경쟁력·생산성 개선과 첨단산업 육성은 미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이다. 경쟁력과 생산성을 개선하려면 노동·교육 개혁과 산업 구조조정, 규제 철폐가 뒷받침돼야 한다. 첨단산업 육성은 그렇게 다져진 토대 위에 정부와 산업계, 교육계가 밀접하고 유기적으로 연계해 미래를 선도할 과제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R&D 투자다. 그런 R&D 투자를 예산 절감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빚 내는 것만큼 해로운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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