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한국보건의료정보관리교육평가원 감사
한현우 한국보건의료정보관리교육평가원 감사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53년 66달러에서 2022년 3만2천886달러로 70년 만에 약 500배 증가했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가난한 박정희 정부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식량 자급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한국이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었을 것이다. 질병 유행 패턴도 1960년대에는 불결한 위생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이 만연했다면 2000년대에는 부자병인 만성병 유행 양상으로 바뀌었다.

2022년 현재 우리나라 질병 사망 순위를 살펴보면 1위 암, 2위 심장질환, 3위 코로나19, 4위 폐렴, 5위 뇌혈관질환, 6위 자살, 7위 알츠하이머병, 8위 당뇨병, 9위 고혈압성 질환, 10위 간질환이다. 이 중 문제가 되는 자살을 분석하면 10대, 20대, 30대에서 1순위이고 40대와 50대에서 2위, 60대에서 5위로 나타난다. 

최근 조사 결과,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 수는 26.0명이며, 하루 평균 36.6명으로 40분에 한 명씩 자살한다는 의미다. OECD가 2022년 발표한 각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한국이 24.1명으로 1위, 일본 14.6명으로 8위, 미국 14.1명으로 9위, 핀란드 13.4명으로 10위다. 우리나라는 OECD 평균값인 11.1명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을 자살행위로 인해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로 죽음의 의도와 동기를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손상을 입히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2021년 전남도 청소년미래재단이 관내 시·군 5천531명의 초등학생~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살 실태조사에서 청소년들의 자살행동은 인터넷, 스마트폰 중독, 가출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며, 2017년 이후 지속 증가했다. 청소년 22%가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7.3%는 실제로 자살을 계획하고 3.5%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조사됐다. 

핀란드는 20세기 내내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였다. 핀란드가 북극지방에 인접해 겨울에 해 보기가 어렵고 인구밀도가 낮아 상호 교류가 부족해 고립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생각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됐던 1965년부터 1990년까지 25년간 핀란드의 자살률은 3배 증가했는데, 국민 정신건강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생산노동인구를 감소시켜 국가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했다. 

이에 핀란드는 1천337명에 대한 자살 원인을 밝히는 심리적 부검(자살 전 자살자의 행동, 주변인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자살 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실시했다. 핀란드 자살 예방 프로그램 핵심은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조기 파악해 신속하게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심리적 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3분의 2 이상이 우울증을 앓았으며, 대부분 자살 전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자살과 관련된 암시나 신호를 보냈다고 나타났다. 

핀란드 정부가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실시한 결과 1990년 인구 10만 명당 30명이던 자살률은 2005년에는 18명에서 2008년 16.7명으로 떨어졌다. 세계 3위까지 올라갔던 자살 순위도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한국이 2003년 이후 OECD 자살률 부문에서 1위를 내준 것은 단 2개 연도(2016년, 2017)뿐으로 국가재난 수준이다. 이는 경쟁·성과 중심 사회와 빨리빨리 문화, 정신건강 문제와 인식 부족, 낙오자와 이방인의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인데 특히 10∼30대에서 자살사망자가 많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세대인데,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국가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도 더 많이 발생하는 자살사고를 사회적 재난으로 선포해 정부와 사회 모두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과 지원체계를 개선함으로써 우리나라 자살률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