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백인, 금발, 20대 초반 여성으로 9등신 비율에 잘록한 허리와 길고 매끄러운 다리 그리고 미소를 띤 얼굴이 인형 바비의 전형적인 형상이다. 1959년 미국의 마텔 사에서 출시한 바비는 공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가 된 바비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추앙의 대상이 됐다. 

유행을 선도하며 시대를 앞서 갔던 바비는 어느샌가 여성의 미적 기준을 획일화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후 마텔 사는 발 빠르게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바비 인형을 선보였지만, 이미 바비라는 존재는 늘씬한 몸매의 젊은 여성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출시부터 현재까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선 바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 소녀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 바비가 영화 주인공이 돼 나타났다. 영화 ‘바비’는 2023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 흥행작이다. 

온통 눈부신 핑크색으로 도배된 세상. 근심·걱정과는 거리가 먼, 웃음만이 가득한 이곳이 바로 바비랜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모토 아래 여성 바비들이 주축이 돼 돌아가는 곳이다. 대통령도, 과학자도, 노벨상 수상자도 그리고 기자와 의사도 모두 바비가 주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없는 건 아니다. 남자 인형 켄도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켄들은 그저 멋진 몸매를 드러내고 플라스틱 해변을 거닐 뿐, 이들에게 주어진 일이나 임무는 없다. 남성들은 바비의 눈빛 한 번 받기를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밤이 되면 바비들은 여성들만의 파티를 즐기며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형적인 금발의 바비에게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피곤이 밀려오고 죽음을 생각하며, 심지어 허벅지에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가 생기고 하이힐에 적합했던 까치발 뒤꿈치가 땅에 닿는 평범한 발이 되는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기묘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 바비는 인간 세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 켄도 동참한다. 

그렇게 당도한 현실에 두 인형은 큰 충격을 받는다. 여성의 파워와 에너지로 가득한 바비랜드와 달리 인간 세상의 중심은 남성이었다. 바비는 자신을 바라보는 노골적인 시선과 휘파람 소리에 불편함을 느낀다. 반면 켄에게 이곳은 낙원이었다. 남성이 주도권을 갖고 지배하는 세상에 매료된 켄은 가부장제를 전파하기 위해 바비를 남겨 두고 서둘러 인형 세계로 돌아간다. 순식간에 확산된 가부장제로 바비랜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마초적인 남성이 군림하는 켄덤랜드가 된다. 바비들은 켄들의 시중을 드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과연 주인공 바비는 자기 앞에 떨어진 여러 난제들을 해결할까? 

영화 ‘바비’는 여성 중심의 바비랜드와 남성 중심의 인간 세계 간 비교를 통해 두 사회 문제점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더 나아가 "바비 인형 같다"는 관용적 표현이 있을 만큼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모습으로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을 가둔 비좁은 편견의 세계를 부수고 진짜 자아를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배우로 시작해 이제는 감독으로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레타 거윅은 여성의 성장 서사에 꾸준히 관심을 쏟는다. 영화 ‘바비’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바비의 모험을 통해 이 영화는 인형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결점이 있어도 괜찮으며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의미라고 말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