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쌀을 먹지 않아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을 걱정하는 시대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소비하는 쌀은 56.7㎏이다. 1992년에는 112.9㎏이었다가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 반세기 전에는 쌀이 모자라 걱정이었다. 법으로 쌀밥을 못 먹게 하고, 쌀막걸리를 만들지도 못하게 했다. 

상황을 도드라지게 바꾼 계기는 수원에서 만든 식량 품종이다. 농업인의 날(11월 11일)을 기념하며 국민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 수원에서 탄생한 품종을 조명해 본다.

다양한 작물 종자들이 옛 부국원 2층에 상설 전시 중이다.
다양한 작물 종자들이 옛 부국원 2층에 상설 전시 중이다.

# 주곡 자급 일등 공신 ‘통일벼’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이 목표이던 시절, 굶주림의 역사를 끊어내고 쌀 품종의 식량 자급을 이뤄 낸 벼 품종은 ‘통일벼’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는 벼는 자포니카 품종이다. 한국과 중국 북부, 일본을 비롯한 온대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자포니카 품종은 둥근 모양에 찰지고 윤기가 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다.

그러나 병충해 피해가 많고 쓰러짐이 심해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웠다. 이에 우리나라는 1960년대 들어 종자 갱신 사업을 시작해 병충해에 강하고 잘 쓰러지지 않는 품종 육성에 집중한 끝에 통일벼를 만들었다.

통일벼는 당시 수원에 있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필리핀에 세운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공동 연구하면서 출발했다.

허문회(1927~2010년)교수가 초청 연구원으로 가 생산성 높은 품종을 개발하려고 열대지역 품종인 인디카와 결합하는 3원 교배 방식으로 다수확 품종 IR667을 육성했다.

이 중 우수한 종자를 선발하고 교배하기를 되풀이한 끝에 유망한 우수 계통 3종을 장려 품종으로 선발했다. ‘수원213호’, ‘수원214호’, ‘수원213-1호’다.

수원에서 적응을 거쳐 1971년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한 통일벼는 정부 시책에 따라 재배 면적을 적극 늘렸다. 1977년에는 전체 논 면적 54%에서 재배했고, 10a마다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일벼로 생산량을 증대하면서 삶의 모습도 변했다. 쌀 자급률이 113%로 올랐고, 주마다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은 쌀밥을 먹지 못했던 ‘무미일(無米日)’이 1977년 1월 중순부터 사라졌다. 그해 12월부터는 14년 만에 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재배 면적을 확대한 통일벼는 이후 가뭄과 수해, 도열병, 태풍, 냉해 따위를 잇따라 겪으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국가에서 품종 분산 정책을 추진했고, 통일벼 개발 이후 한국인 입맛에 맞는 자포니카 품종 개량도 성과를 거뒀다. 결국 자연스럽게 재배 면적이 줄어든 통일벼는 1992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수원이 고향인 쌀 품종은 통일벼 말고도 다양하다. 2000년대 들어 최고 품질 품종으로 개발한 ‘고품(수원479호)’, ‘하이아미(수원511호)’, ‘삼광(수원474호)’은 물론 기능성 쌀로 붉은 빛이 도는 ‘홍진주(수원501호)’, 항산화 성분을 함유한 ‘적진주찰(수원524호)’, 체지방을 줄이는 검정쌀 ‘흑광벼(수원477호)’ 들 다양한 쌀 품종이 수원에서 태어났다.

수원 시민들이 수원 옛 부국원을 찾아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 전시 영상물을 관람한다.
수원 시민들이 수원 옛 부국원을 찾아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 전시 영상물을 관람한다.

# 식량 작물 개발과 육종 중심지

수원은 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물 품종이 탄생한 곳이다. 농촌진흥청이 수원을 떠나기 전까지 개발한 다수 품종이 수원 지명을 활용한 계통명을 가졌다. 식량 작물을 연구하던 국립식량과학원이 주도해 개발한 옥수수·보리·밀·콩 주요 품종도 수원이 고향이다.

옥수수는 ‘수원19호’가 유명하다. KS5(Korea Suwon 5)와 KS6(Korea Suwon 6)을 모본과 부본으로 사용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 옥수수 교잡종이다. 1977년 농가에서 시범 재배를 시작한 뒤 옥수수 수확량이 큰 폭으로 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재래종을 대부분 수원19호로 대체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옥수수 육종을 식용과 사료용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개발해 주목받기 시작한 ‘찰옥2호(수원17호)’, ‘일미찰(수원찰45호)’ 같은 찰옥수수 품종이 나왔다.

맥류 품종에서도 수원이라는 이름을 쉽게 찾는다. 1977년 개발한 ‘동보리1호(수원183호)’는 추위에 강한 품종이다. 한파가 극심하던 1976년 육성 포장에서 대부분 보리가 모두 얼어 죽은 가운데 파랗게 산 품종을 육종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새찰쌀보리(수원292호)’, ‘두원찹쌀보리(수원304호)’, ‘서둔찰보리(수원252호)’, ‘진미찹쌀보리(수원332호)’, ‘재안찹쌀보리(수원356호)’, ‘풍산찹쌀보리(수원358호)’, ‘삼광찰(수원394호)’, ‘황금찰(수원403호)’ 같은 품종을 수원에서 개발했다.

밀의 경우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찰밀 종자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 어렵게 품종을 구해 호텔에서 실험을 하고 여행가방에 담아 개체를 들여온 육종가가 우리나라 재래종과 교배해 ‘신미찰(수원292호)’을 개발했다. 이후 ‘알찬밀(수원257호)’, ‘신미찰1호(수원306호)’ 품종을 육성했다.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할 만한 콩은 이름 자체를 수원 지명에서 딴 품종이 있다. 1960년대 수원농업시험장으로 콩 육종 중심지를 옮긴 뒤 1969년 신품종 ‘광교(수원30호)’를 만들었다.

광교 품종은 재래종보다 33% 수확량이 많고 잘 털리지 않아 인기를 끌면서 20여 년간 전국에서 재배하는 주력 품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괴저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었고, 이후 새로운 종자를 육성해 탄생한 ‘황금콩(수원97호)’, ‘신팔달콩(수원144호)’, ‘태광콩(수원145호)’, ‘대원콩(수원181호)’은 지금도 많이 심는 대표 품종이다.

전시장인 옛 부국원 2층 모습.
전시장인 옛 부국원 2층 모습.

# 부국원에서 만나는 수원 품종 이야기

수원에서 탄생한 품종이 녹색 혁명을 이끌어 낸 역사를 수원 구 부국원에서 전시한다. 오는 12월 30일까지 여는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다. 지난해 말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가 발간한 구술 총서 「품종의 탄생: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한 전시다.

전시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부터 종자와 비료를 팔던 회사 본점이었던 부국원을 무대로 해 지금까지 상설 전시물과 의미를 연결한다. 다양한 작물의 토종 품종과 부국원을 중심으로 한 농업 수탈 역사를 배울 기회다.

1층에서는 품종을 육종한 농학자를 중심으로 품종 개발 뒷이야기를 펼친다. 쌀·옥수수·보리·밀·콩 같은 다양한 품종을 연구하고 개발한 스토리를 패널로 전시하고, 농학자들의 실제 구술 녹음을 영상으로 만들어 실감나게 한다.

2층에는 통일벼에 대한 이야기를 마련했다. 쌀 자급과 관련한 오래된 뉴스 영상물이 흥미를 돋는다.

수원 구 부국원은 전시와 연계한 테마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오는 18일 옥수수, 다음 달 9일 보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인터넷 예약으로 접수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가 발간한 구술 총서 「품종의 탄생」에 나온다. 1부는 식량작물 품종 개발과 수원에서 육종한 품종을 설명하고, 2부는 농학자 구술을 실었다.

▶통일형 벼를 개발한 육종 1세대, 김종호 ▶벼 육종의 세대를 잇다, 정응기 ▶육종 뒤 수확량과 품질을 가름하는 재배기술 연구자, 최경진 ▶옥수수 육종 변화를 이끌어 간 문현귀 ▶옥수수 육종과 품질 분석을 연구한 김선림 ▶옥수수 육종의 현재를 말하다, 백성범 ▶찰보리와 찰밀을 육종한 하용웅 ▶사료용 맥류 육종가, 황종진 ▶태광콩과 대원콩을 육종한 김석동 ▶콩 육종 흐름과 동향을 말하다, 윤홍태 들 농학자 10명이 구술한 육종 이야기를 담았다.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육종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기회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