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와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노동개혁 일환으로 지난 3월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을 보완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주 52시간제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 근로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면서 주 최대 근무시간을 69시간까지 가능하도록 넓혔다. 이에 대해 기존 노조는 물론 MZ 노조까지 ‘과로사 조장법’이라 비판하며 부정 여론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를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8개월이나 지체된 이유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애매모호하고 무미건조한 대책이다. 노사 양쪽도 즉각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경영계는 기존 개편안 후퇴로 현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민노총은 근로시간 개편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극히 일부만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에 정책이 휘둘릴 필요는 없다. 다만, 말 없는 다수 노동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고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안을 도출했는지는 꼼꼼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 개편은 ‘시간 총량과 근로 시점’을 함께 봐야 한다. 우리 근로시간은 연평균(2022년 기준) 1천901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연간 149시간이 길고, 독일보다 연간 560시간 더 오래 일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건강권은 물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은 옳은 방향이다. 동시에 노동생산성이 OECD 최하위권을 맴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양적 감소를 질적(생산성) 개선으로 상쇄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업무 특성과 집중도에 따라 근로 시점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결국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함께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이번 조사로 국민의 뜻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 주당 근로시간(60시간) 상한,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은 앞으로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게 있다. 법 사각지대에 방치된 4명 이하 사업장과 연장근로 보상이 부재한 경비원, 청원경찰에 대한 처우 개선도 절실하다. 늘 그렇듯 가장 추운 곳은 제도권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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