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전재학 전 인천산곡남중 교장

전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 수시로 "한국의 교육을 보라"고 하며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교사의 질적 수준을 언급한 바 있다. 교육열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불필요할 듯싶다. 하지만 교사 수준에 있어서도 그는 한국 교사를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 지칭하며 한껏 칭송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교사 집단은 상대적 비교 우위를 점한 학력 소유자로 평가(상위 5%)를 받는다. 선진국 싱가포르가 15~30% 정도인 점과 비교된다. 이는 매년 교대 진학자들의 학력이 학교별 최상위, 사범대 진학자 역시 상위권에 해당함이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사들에게 무엇이 문제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후속 성장이 지속 이뤄지느냐 하는 점이다. 우수한 학력의 소유자들이 과연 대학 진학 후, 그리고 현직 임용 이후에 얼마나 개인적· 집단적으로 성장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편차가 클 테다. 하지만 중·고교 시절 우수한 인재로 기대를 모은 만큼 지적 성장, 정서지능 역시 그에 버금갈 정도의 내적 성장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왜냐면 우리 교원 정책은 교사 개개인의 성장을 지속 보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학부모와의 불신·갈등·반목으로 송사가 이어지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 아동학대 신고가 끊이지 않고, 심지어 교사들의 극단 선택(최근 10년 내 144건)은 교육시스템 문제점과 더불어 교사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교사들은 지역사회 주요 인사로 대접을 받을 정도의 학벌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지금 학부모나 국민은 이를 능가한다. 예컨대 의사, 판검사, 변호사, 교수, 고위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교육전문가로서의 역량에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이는 곧 학부모 기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평생교육시대의 상징성을 갖고 끊임없이 공부함으로써 성장해야 한다. 단지 학생 대상의 한정된 교과서 지식과 과거 생활지도 방식에 만족해서 성장이 멈추거나 정체되는 건 자살골을 넣는 일과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개혁은 교사의 성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성장은 단지 신체적·지적 용량 증대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교과의 지적 성장은 교사의 기본이다. 여기엔 아동의 정서 발달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 학부모와의 인간관계에 대한 인문적 교양, 시대정신과 날카로운 비판력·분석력, 디지털 대문명을 가속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에듀테크 운영 능력 등등 함께 성장해야 할 게 많다.

그 뿐이랴. 전통적으로 스승이라 일컫는 인격적 덕망을 갖춘 박애주의자, 학급이나 학교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자, 그리고 교육적 시선과 관점에서 흔들리지 않는 철학자로서의 성장도 함께 이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에겐 멀티지능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전문적 독서, 다양한 연수와 경험을 쌓고 사회적 현상과 원리에 대한 이해와 학습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바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자기성장에서 연유한다.

자연 속 애벌레 성장을 보자. 그것은 단지 몸집이 커지는 성장이 아니다. 나비라는 완전한 생명체로의 변화다. 그야말로 눈을 비비고 바라봐야 그 정체의 근원을 알게 된다. 이를 괄목상대(刮目相對)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교사의 성장은 애벌레 성장과 견줄 만하다. 현실에서 그런 성장은 지나친 요구이자 불가능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잠재적 역량이 뛰어난 학력의 소유자가 교사 집단이고, 개개인은 충분한 성장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교사들은 ‘상처 시대’이자 ‘위기 시대’를 살며 ‘생존권 확립’을 부르짖는다. 이에 국가적으로 교권보호 4법 등 관심과 정책이 집중된다. 하지만 교사 개개인의 성장만큼 이 위기를 극복할 처방은 미미하다. 성장이 멈춘 교사는 시대적 위험을 안고 살아갈 뿐이다. 부단한 성장에의 의지와 이를 통한 내면적 성장은 교사 스스로 생사를 가르고 갈등을 해소하는 자구책의 근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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