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은 대체로 ‘일생일대의 도전을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소한 찰나의 선택은 어떨까? 이를테면 몇 시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고, 점심 메뉴로는 뭘 먹을지를 고민하는 그런 사소한 선택 말이다. 그 경우에도 우리 삶이 180도로 달라질까? 언뜻 생각하면 그 정도로는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고 본다면, 찰나의 선택도 꽤 묵직하게 느껴진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아주 작은 차이가 빚어낸 인생의 나비효과를 말하는 작품이다.  

주말 동안 즐긴 생일 파티 여운이 아직 남은 월요일 아침, 헬렌은 서둘러 출근길에 오른다. 익숙한 루틴에 맞춰 회사에 들어선 시간은, 아차차 지각이다. 회의실 분위기마저 냉랭한 가운데 헬렌은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는다.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상사의 결정은 단호하다. 잘나가던 홍보팀 직원에서 실업자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왔던 길을 돌아 다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 그곳에서 헬렌의 인생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듯 전철에 올라탄 헬렌과 아깝게 지하철을 놓친 두 가지 상황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 주며 영화는 진행된다. 

우선 전철에 탑승한 헬렌은 일찍 귀가한 집에서 남자친구가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한다. 2년간의 사랑은 그렇게 배신이란 이름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한동안 시련의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헬렌은 능력을 살려 홍보 사무실을 개업하고, 전 남친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을 만나 결혼도 약속한다. 

한편, 지하철을 놓친 헬렌은 불륜 현장을 보지 못한다. 작가 지망생인 애인을 먹여살리기 위해 헬렌은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당장 급한 생활비 마련에 애쓴다. 언뜻언뜻 남친의 이상 기류를 느끼기도 하지만 아니라는 변명에 속기 일쑤다. 게다가 헬렌은 임신한 상황. 가정을 이룰 결심을 한 중차대한 순간에 그녀는 보고 싶지 않은 연인의 배신을 목도한다. 이렇게 두 개로 나뉜 상황은 이후 뜻밖의 경로로 결합해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 아래 펼쳐지는 각기 다른 상황을 나름의 개연성으로 그린 작품이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을 두 개로 분리한 채 끝낼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의 상황으로 합치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주연배우의 매력에 있다. 헬렌을 연기한 1990년대 대표 청춘스타 기네스 펠트로의 모습은 특히 눈부시다. 중년이 된 현재까지도 여전히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발산하지만, 20대 기네스는 여느 배우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자신만의 오라로 빛난다. 

비록 작품은 범작에 머물렀지만 작고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메시지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