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고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요새 드라마 뭐 봐?"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줬다. 

월화 또는 수목, 주말 드라마를 보려고 오후 10시께 텔레비전 앞에 성실하게 자리잡았다. 지금처럼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플랫폼이 활발하지 않아서 본 방송을 보지 못하면 재방송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속에 들어가겠다고 걱정어린 말을 하는 부모님께는 인기 많은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으면 학교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가 없다고 둘러댔다. 하나 솔직하자면 이유가 뭐든 극 속 주인공 사정에 푹 빠지는 일을 즐겼다.

본인 일처럼 다음 화 주인공을 걱정하며 한 주를 기다리는 생활을 즐겨 드라마를 그만 보기 쉽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본가에서 독립해 텔레비전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드라마 보는 일이 줄었다.

최근에는 안 본 사람이 없다는 ‘오징어게임’과 ‘더 글로리’ 같은 인기 드라마도 다수의 말과 글을 알아듣고자 10여 분의 영상 요약본으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 좋아한 드라마를 멀리한 이유는 단순히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드라마 볼 힘이 없다. 틀어 놓고 눈으로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눈을 뜨고 귀를 열어 극 속 인물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싶지 않다.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마음 졸일 일도, 신경 쓸 일도, 맡은 바도 늘었다. 감정을 나눌 곳이 늘자 적절한 곳에 사용하려고 최대한 아낀다.

20대는 크고 작은 일이 반복됐다. 30대가 된 지금도 연장선이다. 아무리 원하는 걸 손에 꼭 쥐어도 시간이 흐르면 그 안에 새로운 문제와 고민이 생긴다.

이를 꾸준히 경험하니 깨달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게 찾아온 고민과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해야 한다고. 머리를 써야 할 때 감정을 내세우면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이에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는 방법을 택했다. 

감정은 무디고 이성적이면 해결하는 동안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생긴다. 크고 작은 굴곡을 넘는 데 순간순간 감정에 흔들리면서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기대지 않겠다는 방법을 취한다.

아직 삶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순간이 모여 성장하고 여유를 되찾을 때 드라마를 볼 힘도, 문제에 감정을 내세울 여유가 생길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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