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맥 매카시는 2006년 묵시록적 세계를 그린 소설 「더 로드」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환갑이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과 여행 중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떠오른 여러 생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대재앙이 휩쓸고 간 황폐한 세상에 부자가 덩그러니 남겨진다면 어떨까?’라는 상황을 가정해 「더 로드」를 창작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더 로드’는 바로 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생존이 전부가 된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아들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의 사랑과 투쟁을 담은 영화를 만나 보자.

이제 지구는 더 이상 생명이 움트는 초록의 땅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불타 버린 잿빛 세상. 하늘도 땅도 온통 회색 재로 뒤덮였다. 먼지구름이 태양을 가린 탓에 10월임에도 초겨울 같이 춥다. 불타 버린 수목은 바스러질 듯 앙상하고, 살아있는 동물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문명은 멈춰 버렸고 생존 인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토록 절망적인 세상에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은 오늘도 남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따뜻한 곳으로 가라는 아내의 마지막 당부를 따라 정처없이 걸어 보지만, 사실 그곳이라 해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있으니 남쪽으로 향할 뿐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조차 힘겹다. 때때로 아버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의 전부인 아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결국 인간이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멸망한 지구에서 이제 인류의 목적은 단 하나, 생존뿐이다. 먹어야 살지만 비상식량도 오래전에 바닥나 버렸고, 지상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운이 좋아 폐허에서 통조림 같은 음식을 발견할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을 먼저 챙겼다. 이토록 끔찍한 환경이지만 아들과 함께이기에 오늘도 살아갈 만했다. 비록 일각에선 식인이 자행될 만큼 인간성이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은 있다"고 알려 줬다. 언제까지라도 세상의 폭력과 위험에서 아들을 지켜주고 싶은 게 아버지의 마음이지만, 나날이 폐렴이 깊어져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음을 직감한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알려 준다. 총알은 단 한 발뿐이었지만 권총을 다루는 법과 착한 사람·나쁜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을 일러 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속에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라고 당부한다. 

영화 ‘더 로드’는 폐허가 된 문명과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의 절망적인 공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 생생한 절망감을 전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 사용은 최소로 하고 실제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덕에 몰락한 문명의 정서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암담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이 작품은 사실 정반대 메시지를 전한다. 멈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희망을 품고 계속 살아가라’고 말한다. 도처가 낭떠러지 같은 최악의 길이라 할지라도 여러 어려움을 넘기며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의 씨앗이자 소중한 의미임을 작품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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