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뀐다. 그 과정에서 반대 세력에 대한 차별 유인이 정책에 반영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알면서도 근절하기 어려운 필요악과 같다. 선거에 유리하도록 활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정권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놓고 빚까지 내면서 현금을 대량 살포하고, 타당성 없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공수표를 남발했다. 덕분에 수많은 정책 실패가 용인됐고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런 무책임과 이율배반에 분노한 국민이 정권을 교체했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현 정권의 포퓰리즘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국민을 갈라친다. 뜬금없이 터져나온 메가서울 논쟁이 단적인 예다. 국가발전이 한계에 다다른 이유는 서울 집중화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거 열세지역의 표에 눈이 멀어 국토 갈라치기에 앞장선다. 지난달엔 시행 예정인 일회용품 규제를 전격 철회했다. 민생고에 시달리는 소상공인 부담을 고려했다는데 환경 파괴의 주범을 대안도 없이 급작스럽게 연기한 이유는 불 보듯 뻔하다. 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하고, 갑자기 주식공매도 금지에 나선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야당 행태도 도긴개긴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헌법에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이 명시돼 있어도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입법부에 대한)법률안 거부권과 (사법부에 대한)사면·감형·복권의 권한’을 최종 단계에서 갖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다. 한마디로 입법과 사법 독주를 막는 최종적 통제 권한이 대통령에게 부여됐다고 봐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야당은 거부권이 유력한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며, 대통령 탄핵을 운운한다. 헌법 정신을 희화화하는 거나 다름 없다.

정책과 법안이 총선을 겨냥한 당리당략 도구로 전락하면 피해를 입는 건 국민이다. 국론을 분열하고 세금만 낭비하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조삼모사는 원숭이에게나 통하는 짓이다. 

지금 집중해야 할 건 포퓰리즘 남발이 아니라 가장 낙후된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 첫단계로 정치인 자신의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여당 혁신위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도 이를 못 해냈기 때문이다. 가장 혁신해야 할 대상이 결정권을 내려놓지 않고 거부하니 도리가 없다. 이러면 국민이 또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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