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빗물이 내 발목에 고이고, 참았던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이고…." 서글픈 목소리로 서두를 연 노래는 무려 5분간 이어진다.

윤하가 입을 보탠 에픽하이의 ‘우산’이다.

한쪽 다리가 짧아 허덕이는 의자, 풀린 신발 끈, 찢겨진 우산과 고인 빗물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쓸쓸한 심상도 감탄이 나오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건 4분 16초에 다다른 막바지에서 터지는 클라이맥스다.

내내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라는 노랫말을 무난히 읊조리던 윤하 목소리는 이곳에 도달해서야 ‘그댄 나 없이는 안 돼요’라는 노랫말로 바뀌어 전에 없던 고음을 찍는다. 

기존에 깔렸던 다른 세션마저 음량을 낮춰 숨죽인 탓에 청아하고 애절한 고음이 더욱 강조된다.

멜로디가 만들어 내는 구어로서 뉘앙스도 색다르다.

기존 멜로디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톱을 뜯을 것만 같은 자존감 낮은 여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클라이맥스서 ‘나’와 ‘그대’란 단어 자리를 바꾼 채 진행되는 멜로디는 ‘나’ 자리에서 단번에 고음을 올리는 격차 탓에 주먹을 쥐고 상대 가슴이라도 치며 원망하는 듯 발산하는 에너지량이 훨씬 크게 느껴져서다.

마치 조성희 감독 영화 ‘늑대소년’에서 위험으로부터 철수를 지키려 애써 모진 말을 쏟아내며 낙엽과 돌을 던져 "저리 가!"라며 철수를 밀어내던 순이가 떠오를 만큼 서사가 가득 담긴 한 소절이다.

영화를 찍을 때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낸 클라이맥스 2∼3컷만을 위해 60여 컷을 쌓아 간다는 모 감독 말처럼 기자는 오로지 4분 16초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노래 재생 버튼을 누르곤 한다.

앞서 3번을 반복하는 ‘난 그대 없이는 안 돼요’를 견뎌 내야 오직 한 번뿐인 ‘그댄 나 없이는 안 돼요’의 카타르시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보듯이, 어떨 땐 우리들 삶 또한 짧은 클라이맥스를 누리고자 수많은 시간을 견뎌 내는 한 편의 곡 같단 생각을 한다.

정지 버튼을 누를 수도 없고 무한으로 반복 재생도 불가한 오직 한 곡의 노래에서 내 노랫말은 어디쯤을 달리는지 궁금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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