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을수록 빛이 두드러지듯, 빛과 어둠은 상반된 개념인 동시에 서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공존의 대상이기도 하다. 빛과 어둠이 세계를 이루는 한 쌍이듯이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두 개념은 공존한다. 

새미라는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파벨만스’도 기쁨과 시련의 빛과 어둠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23년 3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삶을 녹여낸 작품으로도 알려졌다. 

잊을 수 없는 꿈의 세계를 선사하는 스필버그와 영화와의 만남, 그 시작을 담아낸 스토리 ‘파벨만스’를 만나보자. 

새미 파벨만스는 6세 때 부모님을 따라 처음으로 극장을 찾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컴컴한 공간도, 거인처럼 커다란 사람들의 모습도 공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들을 달래기 위해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영상의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해준다. 

반면 피아니스트인 엄마는 ‘영화는 잊히지 않는 꿈’이라 말하며 보고 나면 즐거울 거라 다독인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어린 새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서커스와 광대의 곡예가 아니었다. 기차와 자동차의 충돌 장면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후 장난감 열차 세트로 충돌장면을 재현하는 아들을 본 엄마는 8mm카메라를 쥐어 주며 매번 기차를 부수는 대신 영상으로 담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날 이후부터 새미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어린 누이들과는 유령영화를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가족 캠핑에서도 새미는 행복한 한 때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캠핑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새미는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된다. 새미네 가족은 아버지의 조수인 베니 아저씨와 친하게 지냈는데, 영상은 엄마와 베니 아저씨의 친밀한 장면도 포착하고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새미에게 그 일은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미는 이 일을 엄마와 자기만의 비밀로 묻어두기로 한다. 이후로도 새미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각색해 전쟁영화를 만들어 학교와 마을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한편 아버지의 일자리 때문에 동부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된 새미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베니 아저씨를 떠난 엄마의 외로움은 우울증으로 발전해 병세가 짙어진다. 게다가 영화를 향한 새미의 열정을 아버지는 지나가는 취미로 취급한다. 이토록 힘겹고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새미는 고등학교 졸업영상을 촬영하며 자기 앞의 슬픔을 조금씩 극복해 간다.

영화 ‘파벨만스’는 카메라가 포착하는 진실과 편집으로 달라지는 영상의 의미를 주인공 새미가 몸소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스필버그라는 예술가의 탄생기를 그린다. 동시에 통제할 수 없이 찾아오는 삶의 비극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는지도 전하고 있다. 

새미에게 발생한 사건만을 놓고 보자면 이야기는 분명 비극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 ‘파벨만스’는 어떤 희망이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라 하겠다. 60여 년이 지나 자신의 유년 시절의 빛과 청소년기의 어둠을 아우러 희망의 메시지로 빚어낸 솜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비극을 버티게 하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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