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문명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담은 장르를 서부극이라 한다. 미국영화 등장과 함께 시작된 웨스턴 장르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황금기를 이뤘다. 서부영화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존 포드 감독인데, 1939년 영화 ‘역마차’를 시작으로 ‘황야의 결투’(1946), ‘리오 그란데’(1950)로 전설을 써 내려갔다. 포드 감독은 후기작인 ‘수색자’(1956)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 서부영화에 대한 자기성찰을 담아내기도 했다. 사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서부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지만 그를 웨스턴의 전설로 부르는 까닭은 초기 서부극 스타일부터 수정주의에 이르기까지 이 장르 발전사를 뛰어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마초적 분위기의 정통 서부극과는 거리가 먼 수정주의 서부극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명망 있는 상원의원 랜스는 아내 할리와 함께 오랜만에 서부의 소도시 신본을 찾는다. 그를 알아본 신문기자는 집요하게 방문 목적을 묻고, 랜스는 자신의 오랜 벗인 톰 도니폰의 장례식 참석 차 왔음을 밝힌다. 마을 사람 누구도 알지 못하는 톰이라는 인물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고, 랜스는 십수 년 전 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동부에서 법대를 졸업한 젊은 변호사 랜스는 무법이 활개치는 서부로 가던 중 악당 리버티 밸런스의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는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신본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인 할리를 만난다. 법과 질서를 신봉하는 랜스는 무법자 리버티를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믿어 마을을 연방정부에 가입시키고자 주민들을 계몽한다. 반면 카우보이 톰은 리버티의 포악한 행동은 법이 아닌 똑같은 폭력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랜스의 생각에 반대한다. 

그러던 중 리버티가 랜스와 친분 있는 신문사 편집장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랜스와 리버티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전개된다. 총 한 번 제대로 다뤄 본 적 없는 랜스의 패배가 명확한 상황에서 뜻밖에도 결투는 리버티의 사망으로 종결된다. 이후 랜스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명성을 얻고, 정계에도 진출해 성공 가도를 달린다. 사실 악당을 무찌른 자는 톰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방아쇠를 당겨 결투를 랜스의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톰은 시대와 세상이 변함을 파악한다. 개척과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시대는 저물고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새 시대가 올 것임을 인식한 톰은 자신의 손으로 처단한 무법자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작중 무법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법치의 새 시대가 시작됨을 비유해 서부극과 자신의 세계도 이제는 저물고 있음을 향수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다. 낡고 오래된 건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고, 그 자리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임을 이 작품은 말한다. 그러나 새 흐름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영원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과거를 토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고전 웨스턴 영화가 주류를 형성하지는 않지만 그 DNA는 여전히 무수한 영화에 뿌리내려 숨 쉰다. 존 포드 또한 영화가 존재하는 한 시대를 초월한 감독들의 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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