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전 인천시약사회장
김사연 전 인천시약사회장

세월은 나이 속도로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다. 올해는 1월 초부터 병·의원을 드나들어 그 말이 더 피부로 느껴진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약국을 운영해 병·의원을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주팔자에 83세까지 산다는 말만 믿고 자신만만, 웬만한 검진조차 받지 않았다. 약국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이 없어 기초 질병은 자가 치료했다.

심지어 코로나19 말미 감염조차도 알아서 처리했다. 피로가 쌓였지만, 부고를 받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거의 매일 영안실을 찾은 게 화근이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조문을 가지 말라고 주변에서 만류했건만 경사도 아닌, 궂은일을 외롭게 치러야 하는 유족이 안쓰러워 영안실을 찾아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식사까지 하고 왔다. 약사회장 시절부터 회원들의 궂은일은 아들의 결혼식 전날까지도 챙겼으니 당연지사였다. 

조문 후로 몸살 기운이 오더니 목이 아파 침을 삼키기도, 숨을 쉬기도 고통스럽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19인 듯했다. 하지만 보건소나 의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팬데믹 때처럼 적극적인 대처를 해 주지 않고 코로나19 검사비를 받았으며, 활동을 규제하는 전화만 자주 온다는 말을 경험자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으면 1주일이면 낫고, 안 먹어도 7일이면 낫는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두문불출 3~4일간 자가 치료했더니 증상이 사라졌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나 보다. 남동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매년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여기저기 이상 증상이 드러났다. 그러잖아도 체중이 줄고 피로감을 자주 느끼는데, 보는 이마다 안색이 안 좋다며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다. 중단한 당뇨약을 다시 처방받고 위와 대장 내시경검사, 간과 신장 초음파검사를 받았으나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종합병원에서 PSI 수치가 높은 전립샘 조직검사를 받았더니 12개 조직 중 2개 조직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담당 교수는 수술을 권하지 않고 6개월 후 다시 검사하자고 해 이달 말로 진료일을 잡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5년 전 청각신경 뇌 샘종으로 산정 특례 환자로 등록됐는데 또 암 판정을 받다니 기가 막혔다. 뇌 수술하기엔 발병 부위가 너무 위험하다고 해 방사선 시술로 응급조치했지만, 후유증으로 머리가 무거워 후배 약사들이 처방한 한방과립제를 입에 달고 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남동구지사 자문위원회의에 참석해 때늦은 병원 순례를 털어놓으며 정부의 산정 특례자 혜택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양효숙 지사장님은 평소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않은 환자들도 사망 6개월 전후에 적잖은 의료비용 혜택을 본다며 정기 검진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게 국민건강보험의 목표라고 했다. 환자들은 치료보다 각종 검사 과정에 더 고통을 겪는다.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힘에 부치는 운동과 스트레스를 주는 모임은 피하는 중이다.

며칠 전, 모 잡지사에 공모한 생활 수기가 우수상을 받았다며 집으로 현장 실사를 나왔다. 직원은 70대 고령 수상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비록 병원을 순례해도 아직 사춘기 문학 소년이라고 여겼는데 잡지사 젊은 직원은 잊었던 현실을 깨우쳐 준다. 12월이 지나면 또 나이테가 추가된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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