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을 간략하게 표현한 묘비명은 살아생전 고인이 좋아하던 시나 문장으로 새겨지는 경우도 있고, 유언이나 스스로 정한 글귀 따위로 채워지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인 묘비명은 "OOO 여기에 잠들다"와 같은 표현이지만, 고인의 성향이나 지나온 삶의 흔적에 따라 진한 슬픔이 묻어나게 작성하기도 하고 혹은 유머를 담은 재치 있는 글귀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러 분위기로 나뉘는 묘비명은 어찌됐건 한 사람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하고 또 기억하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삶은 결국 이야기로 남는다. 떠난 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망자를 추억하고, 또 그 기억은 이야기를 통해 후대로 전달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빅 피쉬’는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손자에게 전하는 아들에 관한 영화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팀 버튼 감독의 2003년도 작품으로, 특유의 기괴함은 덜어내고 가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사로 채워졌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출산이 임박한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윌. 사실 윌은 아버지와 몇 년간 대화 없이 지냈다. 이유인 즉, 아버지의 허풍에 질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허무맹랑한 아버지의 무용담이 재미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얼토당토않는 레퍼토리에 신물이 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멈출 줄 몰랐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황당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말솜씨도 좋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그 이야기에 매료됐다.

아버지는 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산부인과를 온통 뒤집어 놓은 놀라운 첫날의 기억부터 모든 삶의 여정이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또한 남들보다 성장도 빠르고 머리도 좋아서 상이라는 상은 모조리 휩쓸었으며, 예술적 소질과 운동신경도 탁월해 못하는 게 없었다. 게다가 용감하기까지 해 마을 밖 마녀의 집에 찾아간 사연, 거인 친구를 둔 에피소드, 시간이 멈춘 유령 마을에서의 추억과 첫사랑인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하룻밤에 수선화 만 송이를 심었다는 등의 로맨틱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오히려 부자관계를 멀어지게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 삶에 진실한 순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간을 곁에서 보내던 윌은 창고 정리 중 아버지의 과거를 접하고, 서서히 그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 ‘빅 피쉬’는 가치관이 달라 갈등을 빚은 부자의 화해를 담은 작품이다. 사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순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인 것으로, 그 과장도 감정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들 윌이 태어나던 당시를 묘사한 큰 물고기 사건도 그처럼 거대한 물고기를 만난 것이 놀랍듯, 아들 윌을 얻은 게 아버지에겐 커다란 기쁨이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방식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 윌은 자신의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전하며 그의 삶과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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