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KG에듀원 교수 
김준기 KG에듀원 교수 

광복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국민 모두에게 공로를 인정받는 전직 대통령은 없어 보인다. 비록 공산화를 막고 산업화를 기적적으로 이끌었더라도, 아무리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성취했더라도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인색하고 냉소적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太上(태상) 下知有之(하지유지) 其次(기차) 親而譽之(친이예지) 其次(기차) 畏之(외지) 其次(기차) 侮之(모지)’라고 헤 통치자를 정치 수준에 따라 네 등급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백성들이 그저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 뿐 통치의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는 사람을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 여겼다. 이러한 지도자는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천하가 편안하고 온전하게 유지된다.

다음은 존경을 받고 칭찬을 듣는 지도자다. 상하가 친근해 칭송받는 경우로 이른바 왕도정치나 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지도자가 이 범주에 속할 법한데, 이런 권력자는 온화하게 상대를 포용하고 자연스럽게 조직을 안정시키며 원만하게 주변을 융합시킨다. 굳이 찾자면 링컨이나 처칠 정도를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칫 줏대 없이 마음만 좋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세 번째는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폭력과 억압을 자행해 두려움을 주는 위정자로, 법치를 과도하게 오·남용하거나 체제 유지에 사활을 건 독재형 정치인을 들 수 있는데 진시황이나 현재 북쪽의 세습 독재자 등이 있다. 이들은 강력한 결속력으로 세를 모으고 불 같은 카리스마로 판세를 장악해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사태를 이끈다. 기염을 토하며 일사분란하게 집단의 안정을 도모해 큰 성과를 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정국을 위축시키고 국정 운영 방향에 혼선이 생기면 혼란이 야기되고 대책 마련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다.

한편, 가장 하급은 백성들에게 능멸당하고 빈축을 사는 축이다. 예컨대 당장의 지지에 집착해 편을 가르고 현재 인기에 영합해 국민 세금을 자기 돈처럼 살포하면서 국가 재정을 파탄 지경으로 내모는 경우다. 그래서 결국 나라를 골병들게 만들며 국민을 사지로 밀어넣고, 미래 세대를 빚더미에 올려놓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얼핏 떠오른다. 또한 겉으로는 유권자를 향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각종 불법과 탈법으로 온갖 편의를 도모하고 갖은 이익을 편취하는 이중적이고 자기 모순에 빠진 자들도 역시 이 부류에 든다.

하나 더 첨부하자면 연암 박지원은 ‘因循姑息(인순고식), 苟且彌縫(구차미봉)’,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세상이 어그러지고 무너진다고 했다. 이는 낡은 인습을 고집하고 허물을 은폐하며 구차하게 어려움을 모면하고 미봉책으로 난관을 넘어가는 행태를 경계한 것이다. 이 정권이 내세운 교육·노동·연금 개혁이 과연 이익 집단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성공할지, 아니면 종국에는 말만 앞세운 공염불이 되고 말지 국민들은 지켜본다. 그리고 정면 돌파를 기피하고 울고 보채면 은근하게 물러서고, 저항하고 맞서면 적당하게 타협하는 식으로 국민들을 호도하는지 역사는 주시한다. 

개혁을 포기하고 없던 일로 대충 넘기려 들고, 어쩔 수 없으니 한번 봐달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임시변통으로 비판이나 모면하려는 처사는 국가 장래를 외면하고 유권자를 기만한다는 혐의를 품게 한다. 물론 비난보다 더 난처하고 어려운 사태는 통치자가 국민들에게 놀림을 받는 지경에 직면하는 것이다. 비난이 이념에 따른 정략적 차원에서의 공격이라면 조롱은 감정에 따른 개인적 측면에서의 폄훼이기 때문이다.

비서나 비서관과 둘러앉아 국가 운영을 꾀하는 한 대한민국 미래는 발전을 담보하고 앞으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잦은 해외 순방보다 장관이나 실무자와 마주앉아 정책을 협의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것이 대통령에게는 더 시급하고 우선적인 일이다.

통치에 대한 인기는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자라며, 개혁에 대한 성과는 국민들의 지지를 입고 커진다. 새해에는 너무 사납거나 무능하지 않고 머리와 덕과 위엄이 더욱 균형을 잘 갖춰 행해지는 치세를 희망해 본다. 너무 과도한 기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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