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제자가 스승에게 추위나 더위를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스승은 그것이 없는 곳으로 달아나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제자가 그곳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추위가 오면 추위 속으로 뛰어들고 더위가 오면 더위 속으로 뛰어들라고 스승은 말해 줍니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비난이나 원망 대신 그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행동하라는 뜻일 겁니다.

‘지금 이 순간’ 겪는 불편한 상황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며 사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해석하며 살아야 할까요?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에 대해 순간을 사는 법을 아는 사람, 그렇게 현재에 살며 상냥하게 주의 깊게 길가의 꽃 하나하나를, 순간의 작은 유희적 가치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인생은 상처를 줄 수 없는 법이다."

정호승 시인은 「위안」에서 대학 졸업 후 30년 만에 친구와 함께 찾은 교정을 걸으며 느낀 감회를 소개했는데, 이 글에서도 해답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는 낯선 건물들이 들어섰고 진입로 옆에 새로운 인도도 생겼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나무들뿐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어째서 나무들은 많이 굵어지지도 않은 듯해!"라고 하자, 친구는 "나무들은 그리 급할 게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나무들이 부러웠다. 나처럼 급하게 서두르며 살아오지 않아서다. 그러나 보기에는 자라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겸손하게 속으로 나이테를 그으며 내면을 키우는 삶을 살아왔으리라.

나는 늘 초조하고 무언가 더 높고 더 나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왔다. 나무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여유 있게 기뻐하면서 제대로 시간을 사용할 줄 몰랐다. 시간이 나무나 인간을 늙고 병들게 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면, 나는 나무처럼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삶의 태도를 갖고 싶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 오늘의 아름다움도, 오늘의 사랑마저도 내일에는 미움과 증오로 얼룩진다. 나무는 사람들처럼 한 해를 한 달처럼, 한 해를 하루처럼 살지는 않는다. 나무는 하루를 한 해처럼 산다.’

멋진 사유입니다. 오늘 하루를 한 해처럼 살아가는 나무! 그러니 그 하루를 불평과 원망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혹독한 더위와 혹한의 고통 그리고 매연으로 인한 불편함까지도 그 하루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이라 한다면,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긍정력 사전」(최규상)에 돼지와 소의 대화가 나오는데, 이 유머가 함의한 지혜 역시 큰 울림을 줍니다.

돼지가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지? 나는 죽어서 고기도 주고 머리도 주고 발목까지 주는데 왜 욕할 때마다 ‘돼지 같은 놈’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하자 소가 답했습니다. "너는 죽고 나서야 베풀잖아.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에게 우유를 주잖아."

지금 이 순간순간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희망을 전하는 삶, 이것이 소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행복의 비밀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한 기쁨만큼이나 고통도 마주해야 합니다.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고통마저도 나와 너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견인합니다.

곧 새해가 됩니다. 새해도 많은 고통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를 1년처럼 여기며 그 하루를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심는 그런 하루들로 채우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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