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새로운 해가 밝았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으로 청룡의 해라고 한다. 용은 동양에서는 신화나 전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강력한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특히, 청룡은 孟章(맹장)으로도 불리며 ‘사계의 신’ 중 하나로,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지며 봄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음양과 5속 이론에 따라 동방은 나무에 속하고, 청색에 속하기 때문에 ‘청룡’ 또는 ‘토룡(土龍)’이라 불린다. 그리고 ‘사상(四象)’ 중 ‘동방칠수(東方七宿)’인 ‘각(角)’, ‘항(亢)’, ‘저(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 등의 성좌를 합쳐 용의 모습으로 상상된다. 

‘청룡’이라는 이름은 천문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주로 상고시대 사람들의 별들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와 농경 문화에서 유래한다. 동방칠수의 출몰은 강우와 상호 대응되기에 용을 봄과 비바람을 관장하는 신령으로 여겨 생기와 희망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용이 관장하는 강우는 농경의 성패를 결정하고, 이로써 농업 생산이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용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토템’으로 여겼다.

그 후 사회의 발전과 문화의 교류에 따라 청룡의 이미지도 끊임없이 풍부해지고 변화됐다. 다른 신화와 전설과 결합 되는데, 예를 들면 복희씨, 여와씨, 헌원씨 등 상고 제왕은 모두 청룡의 화신 또는 후예로 여겨진다. 

또 다른 신수와 어울려 사상(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사령(청룡, 주작, 현무, 기린) 등의 조합을 이뤘다. 한편 청룡은 도교에서도 4대 신수의 으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 여러 신 중에서도 높은 위상에 속하는 삼청신군(三淸神君)에 해당된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역」일 것이다. 올해 갑진년(甲辰年)을 주역괘로 전화하면 뇌풍항괘(雷風恒卦)의 6효가 나온다. 여기서 恒(항)이란 ‘천지의 바른 도(天地之道)’가 춘하추동 사시를 순환하고, 만왕만래(萬往萬來)하여 끝없이 변화하면서 항구(恒久)이 나아가는 변치 않는 이치를 말한다. 항괘의 괘사를 보면 "항은 형통하니 허물이 없다. 바름이 이로우니 나아가는 바가 이로우리라(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고 했다. 우주삼라만상은 복잡다단해 보이는 것 같지만,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이치로써 생로병사를 순환하며 항구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 이롭다고 「주역」은 말한다. 

항괘가 말하는 항(恒)의 이치는 형통(亨通)하고 무구(无咎)한 도를 의미한다. 만물은 춘하추동 사시를 순환하면서 생장수장의 이치를 순환한다. 즉 생명이 끝없이 이어지는 ‘생생지도(生生之道)’의 이치는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항구한 순환의 이치에 큰 진동이 일어나 갑자기 흔들린다면 평안이 깨질 수가 있다. 단잠을 자다가 봉창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격이다. 바로 뇌풍항괘 6효의 효사는 ‘상육, 항(恒)을 흔드니 흉하리라(上六, 振恒 凶)’이다. 여기서 진(振)은 진동한 진자이다. 진항(振恒)이란 항(恒)을 흔들어 대는 것을 말한다. 항(恒)이 위에서 크게 동요하는 것이다. 항덕(恒德)은 춘하추동으로 변화하면서도 만물을 항구(恒久)하게 유지하듯 항상(恒常)의 이치로 드러난다. 그런데 항덕(恒德)이 흔들리니 끝내는 공(功)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소상전(小象專)」에서 이것을 ‘위에서 항(恒)이 망동(妄動)하니 크게 공(功)을 이루지 못하리라(振恒在上, 大无功也)’라고 풀이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진동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2023년 들어오면서 사시순환의 항구한 이치가 온난화로 흔들리면서 기후 이변으로 지구가 진동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전쟁을 시작하고 주변 국가가 휘말려 들어갔다. 국내 정치는 상식을 뒤집고 거꾸로 간다. 식민 지배와 전쟁, 독재와 민주화를 경험하며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진동하고 있다. 항(恒)을 진동시키는 유형은 난국에 빠진 경제문제일까? 대립 구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일까? 정치적인 변동일까?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까? 지구가 흔들리고 땅이 흔들릴까? 아마도 각자도생(各自圖生) 우리에게 주어진 올해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흔들림(振)을 끝내 이겨낸다면 오히려 새로움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恒)의 평안한 이치가 흔들리며 무너지는가, 아니면 새로움을 창출하는가의 여부는 우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이 될 것이다. 

올해 갑진년은 청룡이 크게 진동하며 하늘로 승천하는 해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원하는 대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크게 흔들릴 때, 우리는 이때를 기회 삼아 오히려 청룡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진토(辰土)에 뿌리내린 갑목(甲木)을 잘 키워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울 때 오히려 강해지는 특성을 가졌다. 흔들림을 역이용해 새로움을 창출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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