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올해는 갑진년(甲辰年)이다. 갑진년은 풍요와 번영의 상징인 푸른 용(靑龍)의 해다. 용(龍, dragon)의 순수한 우리 이름은 미르(訓蒙字會:훈몽자회) 또는 미리(雅言覺非:아언각비)다.

용은 임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고려가요인 ‘쌍화점’을 보면 우물가의 처녀가 용에게 손목을 잡힌 이야기가 나와 우물의 용이 바로 임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역성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용비어천가’에 태조 이성계를 포함한 윗대 선조들을 모두 용으로 표현하는데 용안(龍顔), 곤룡포(崑龍袍), 용상(龍床), 용좌(龍座), 용가(龍駕) 등의 단어들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용은 십이지의 다섯 번째 동물로 ‘辰(진)’이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용의 특징을 그대로 닮아 힘차게 기상하는 모양이며, 시간으로는 오전 7~9시 사이를 뜻하고 달로는 음력 3월에 해당한다. 

유일하게 실제 하지 않는 상상 속 동물인 용은 비와 구름을 관장하며 다산과 농경사회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입신양명, 성공, 재물, 출세 등을 상징한다. 민간에서는 귀한 옷과 그림, 도자기, 가구 등에 용 문양을 활용했다. 오행사상에서 청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청룡은 사신(四神)의 하나로 ‘동방을 수호하는 신성한 용’으로 여겨지며, 오행 중 나무(木)의 속성을 지니고 봄에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용은 호국의 상징이기도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황룡사(皇龍寺)에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의 항복을 받아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탑을 세웠는데, 머지않아 삼국이 통일됐다고 나온다. 또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 왕인 탈해(脫解) 이사금(尼師今)이 용의 자식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설정됐다. 「고려사」에는 서해 용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아버지에게 먼 훗날 아들이 왕이 될 것을 예언했다고 나왔다. 「홍길동전(洪吉童傳)」에도 아버지 홍 판서의 꿈에 청룡이 나타나 홍길동의 탄생을 점지해 줬다. 

신라 원성왕 때는 당나라 사신이 동해용과 청지용, 분황사 용을 고기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가려던 것을 되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진평왕 때는 용 그림을 그려 놓고 비를 기다리는 화룡제를 지냈다. 고려 헌종은 흙으로 용의 형상을 만들어 토룡제를 지냈다. 또 조선시대에는 오해와 오강을 정해 용신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민간 설화에도 용왕과 용궁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 속담에는 용에 관한 것이 유난히 많은데,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변변찮은 집안에서 인물이 났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갑진년은 크고 작은 정변이 많이 일어나 기득권 세력이 교체됐던 해로, 2024년 국회의원선거가 있어 정치적으로는 아주 혼란스럽고 당쟁이 더욱 심화하리라 전망된다. 북한과는 적대 관계로 대화가 단절되고, 북한의 계속적인 위협 무력 도발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경제는 고금리와 고물가, 실업, 부익부빈익빈 문제로 서민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하겠지만, 수출 호조로 국제수지가 지난해보다는 다소 개선돼 국민 경제가 조금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흉악범죄 증가, 환경오염, 이념과 세대 갈등, 노사 문제, 교통문제, 인권 문제, 지역 간 불균형으로 항상 불안하고 문화는 정체성 위기, 전통문화 단절, 문화재 보호와 환수, 다문화 사회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으리라 본다.

갑진년에 태어난 사람은 강직하고 늠름하며 재주가 많아 일평생 풍족하고 높은 벼슬에 오를 가능성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과 전남도 등에 따르면 전국 용 관련 지명은 전남 310개, 전북 229개, 경북 174개, 경남 148개, 충남 111개, 충북 72개, 경기 67개, 강원 54개, 대구 15개, 대전 14개, 울산 12개, 제주 12개, 인천 10개, 서울 9개, 부산 7개 순으로 많다. 용과 관련된 지명은 주로 용 모양이나 승천하는 전설과 관련 있다. 전국적으로 용 관련 지명은 마을 명칭이 1천40개를 차지했고, 용을 닮아 붙은 지명이 407개로 나타났다. 용의 머리를 닮아 지어진 지명도 110개에 달했다.

2024년은 다른 해에 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모두 험난한 해가 되리라 전망되지만, 용꿈을 꾸면 승진을 하거나 영귀해지고 귀한 자식을 잉태한다는 말도 있듯이 올해 좋은 용꿈을 꿔서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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